문화/문화 산책

서지영 사진전-11/8/24~29

맑은물56 2011. 8. 29. 09:35

서지영 사진 展

 

DREAMING FLOWERSⅡ

 

리시안_80x80cm_inkjet print_2010

 

갤러리 이앙

 

 2011. 8. 24(수) ▶ 2011. 8. 30(화)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90-18 뉴시티 빌딩 B2 | T. 02-3672-0201

 

www.galleryiang.com

 

 

릴리_60x75cm_inkjet print_2010

 

 

서지영 개인전 - <Dreaming flowers Ⅱ>

 

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 특히 정물화에서 꽃은 순수하게 장식적인 기능을 하거나 종교적인 우의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기능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많았다. 자연에 관해 인문학적이고 과학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르네상스 이후, 꽃은 그 자체의 특징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꽃에 대한 접근 방식은 두 개의 시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꽃의 생김새, 색채, 질감과 같은 실제의 겉모양을 정확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꽃이 가진 고유한 내적 성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자연주의자적인 관점이다. 전자가 꽃에 대한 형식적이고 문양화된 식물학적인 접근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꽃의 생명력이나 관능미에 대한 감각적인 인식과정에서 비롯된다. 이 경우 꽃은 모든 자연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변화의 유기적인 조화를 의미하거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감성적인 생명의 아름다움과 허무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지영의 <Dreaming flowers> 시리즈는 율동적인 선과 색채, 살아있는 형태감을 통해 꽃의 정신적인 생동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꽃 정물사진 작업은 꽃의 알레고리적인 의미, 즉 상징 언어로서 꽃의 본질적 속성과 그 속에서 우주적 질서를 감지하게 해준다. 작가는 화병에 꽂혀있는 부케의 장식적인 기능처럼 도식화 되어버린 꽃이 아니라, 그것이 피어나고 활짝 만개해서 숙연히 고개를  떨구는 그 순간순간의 생명력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바늘구멍 카메라는 5일 내지는 20일 동안의 장시간 노출을 통해 부케의 일상을 기록하고, 사실의 극대화라는 기법을 통해 이미지화 된다. 그의 작업에서 모든 시작은 시간 속에 존재하며, 장시간 노출은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다. 따라서 사진으로 재현된 이미지는 과거가 현재가 되고 미래도 현재가 되는 긴 시간의 층위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사진적 재현에 의해 환기되는 이미지의 연상 작용은 곧 우리들의 ‘자화상’인 셈이다. 모든 사물에는 각각의 운명이 주어져 있듯이, 그 운명에의 순응은 결국 자연의 순리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이 쓰고 갈 시간의 총량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은 나고, 자라고, 어느 순간 시간의 수레바퀴에 의해 주어진 운명의 길을 가야 한다. 이 시간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눈으로 지각할 수 없는 영역에 은폐되어 있는 어떤 본질 같은 존재이다. 서지영의 <꿈꾸는 꽃> 시리즈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존재의 현존을 아주 긴 시간의 응축을 통해 사진이미지로 가시화시켜 준다.

 

 

바빌론_30x35cm_inkjet print_2010

 

 

그의 근작인 <Dreaming flowers 2> 시리즈는 고전주의적이면서 현대적인 구성과 색채, 그리고 엄격한 절제미가 매우 돋보인다. 특히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곤충이나 나비, 새 등의 새로운 오브제들이 꽃 주위에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정물화에서 꽃이나 거울(유리병 표면에 나타난 볼록거울 이미지), 곤충이나 나비와 같은 작은 동물들은 바니타스(vanitas)나 메멘토 모리(memento-mori)를 상징한다. 꽃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일찍 시들기 때문에 인생의 무상함이나 순간의 불연속성, 모든 것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의미한다. 곤충이나 나비는 애벌레 상태에서 부화하기 때문에 탐욕과 허무 혹은 죄에 얽힌 인간의 모습이나 부활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예술가들에게 시간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자기 성찰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어제와 내일이 항상 같은 상태로 지속될 수 없듯이 시간의 불가항력 앞에서는 허무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서지영 작가의 의도는 이와 같은 꽃의 아름다움과 생명력,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핀홀 카메라의 심미적 거리감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 <튜울립>(2010)이나 <레넌큘러스>(2010)는 마치 흩날리는 바람이 꽃잎을 수그러지게 하거나, 바삭바삭 소리를 내게 하거나 또는 시든 꽃에서 꽃잎이 떨어질 때 꽃 사이를 지나가는 세월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는 바늘구멍 카메라를 이용해 꽃이 피고 지고 떨어지며 흩날리는 작은 세부까지 꼼꼼하게 재현해냄으로써, 사물의 변화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상념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뽀삐_50x50cm_inkjet print_2011

 

 

우리는 사진기가 대상을 냉정하고 분석적으로 묘사하며, 물질적 실재를 사실적으로 기록한다는 믿음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다. 그것은 사진이 사물의 은폐되어 있는 부분을 드러내어 사물의 본질적인 속성을 폭로하는 습성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바빌론>(2010)은 물이 반쯤 채워진 유리병에 한 다발의 꽃이 어지럽게 꽂혀 있다. 주변에는 박제된 나비와 꽃 모양의 문양들이 마치 조화를 스크린에 고정시켜 놓은 것처럼, 화면 앞으로 툭 튀어나온 듯 시각적 착각을 불러온다. 생화의 아름다움은 시간의 무게에 갇혀있고 반면에 가짜들은 빛의 세례를 받아 자신들의 그림자를 당당히 드러내 누가 진짜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겹겹이 쌓인 시간은 깊이 있고 다채로운 색채 효과를, 끊임없이 율동적인 선은 생명의 관능적인 미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뽀삐>(2011). 또한 바탕에 그려진 정적인 디자인이나 문양은 결국 꽃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대조적으로 암시하기 위한 장치이다<릴리>, <리시안>, <셀림 보라옐로이>(2010). 이 작품들은 진짜와 가짜, 전경과 배경, 실재와 허구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일종의 시적 환상을 불러온다. 유리병 속의 꽃은 관상적인 삶을 의미하지만 실재이고, 곤충이나 나비는 꽃의 꿀을 찾아 날아드는 ‘방황하는 영혼’ 내지는 ‘숨겨진 욕망’을 암시하지만, 여기서는 생명력을 상실한 한낱 박제된 오브제일 뿐이다. 이와 같이 작가는 <꿈꾸는 꽃> 작업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존재와 부재를, 실재와 비실재를, 그리고 닮음의 아이러니를 부각시켜 꽃의 생명력과 존재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사진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결국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새로운 환영을 창조하는 것이다.

 

 

셀림 보라옐로이_130x150cm_inkjet print_2010

 

 

현대 사진가들이 직면한 미적 문제는 현실의 대상을 얼마나 신중하게 변형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진의 사실주의적 속성을 고루한 아카데미즘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현실성의 부정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예술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이러한 열망에 가장 적합한 매체가 디지털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서지영은 근 10년 동안 아무런 기계적 장치가 없는, 그러나 아름다운 기계인 바늘구멍 사진기를 이용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그에게 이 원시적인 카메라의 기계적인 미는 “파괴적인 속도의 시대에 심미적인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 는 고백에서처럼, 시간의 원근과 심미적 거리감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미적 도구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미적 감수성은 바늘구멍 사진기라는 매체와 시간과의 역설적인 관계를 통해 현실을 번역하고 제시함으로써 드러난다. 그의 정물사진이 정물화와 다른 점은, 꽃의 존재와 생명력을 직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상징적 알레고리를 강화시켜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꿈꾸는 꽃 2>를 통해 작가 자신의 미학적 기질과 성향을 가장 감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