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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래산의 먼지/ 최동호

맑은물56 2011. 8. 25. 20:14

 

 

 

 

모래산의 먼지/ 최동호

 

 

무모한 자가 아니라면

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는다

혁명도 사랑도 시시하다

외로움으로 부스러진

 

시의 먼지 하나에 칼끝을 겨누어

피 밴 말의 소금기를 맛보았는가?

 

사막을 걷다가

뼈가 부스러진 말은

그림자도 없이

낙타 발굽 아래 모래산 먼지가 된다

 

- 시집『공놀이하는 달마』(민음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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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칼끝은 언제나 자기 몸뚱이를 향하고 있기에 시를 쓴다는 것은 두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혁명도 사랑도 시시’해져 버리고 살을 깎는 고통과 ‘외로움으로 부스러진’ 다음에야 쓰지는 한 줄의 시라면, 시인이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자가 아닐 수 없다. 철저한 자기비판과 단호한 검열로 자신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했던 김수영에게서 그런 면모를 두드러지게 본다.

 

 겉멋만 들고 자기비판이 결여된 글쓰기, 관념이 난무하거나 영롱한 광휘의 언어에만 골몰하는 글쓰기를 폐기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설 때라야 비로소 ‘피 밴 말의 소금기를 맛보’게 될 것이다. 김수영의 그토록 무모한 고독과 투명한 비애가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나가게 했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그 오체투지로 고독한 주체만이 행사할 수 있는 정신의 위대함을 추구했다.

 

 마침내 제 ‘뼈가 부스러진’ ‘모래산의 먼지’를 제 발자국으로 덮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투쟁하며 스스로 제 소금기를 핥으며 스스로 모래산의 먼지가 되는 일, 무모하고 위험했지만 결코 의미 없거나 가볍지 않았으리. 그리고 사랑도 시도 내던져버리고 위험한 혁명만으로 자신을 불살랐던 또 다른 존재를 우리는 기억하노니.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고 그 신념대로 행동했으며 우리에게 평등과 정의를 가르친 사람 ‘체 게바라’

 

 스스로의 이익보다 민중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가장 인간적이며 혁명적이었던 사람. 그의 나이 서른둘에 쿠바 중앙은행의 초대총재가 되어 맨 먼저 한 일이 자신의 급료를 5천페소에서 1천2백페소로 낮춘 것. 이에 놀란 쿠바의 자본가들은 허둥대며 모두 마이애미로 줄행랑 쳤고, 그는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으며, 노동을 하면서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복지’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라고 외쳤다. 하지만 게바라의 이 말을 끔찍하게 오독하고서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했으나 몰락한 이 땅의 한 고급관리가 있었으니, 진정한 영웅을 저들의 뼈가 바스러진 모래산에 오르지 않고 어찌 알 수 있었으랴. 과연 그는 신념을 지키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나라의 장래와 국민을 위해 밀알이 되고자 했던 걸까? 이백억짜리 이벤트로 정치풍향계가 한 바퀴 휙 돌아갔지만 여전히 감이 안 잡힌다.

 

 

권순진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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