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나를 찾아 가는 길

이입행입(理入行入)-성륜사 본연스님

맑은물56 2011. 8. 8. 10:29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136 -성륜사

136. 달마 스님께서 하신 법문 가운데서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은 이입행입(理入行入)이라, 다스릴 리(理)자, 행할 행(行)자, 들 입(入)자, 수행에 들어간다, 먼저 원리(原理)로 들어간 다음에 그 원리에 입각해서 실천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꼭 그리해야 하는 것이지 원리에 대한 바른 인식도 없이 그냥 바로 닦아서는 우리 생명을 낭비하면서도 합니다. 공부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과거 전생에 닦은 사람들은 더러 많이 나아진 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굉장히 힘을 낭비하고 상기(上氣)가 되어서 그때그때 고생을 호소합니다. 따라서 분명히 먼저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식론(認識論)적으로 바른 인식을 해야 합니다.


이입행입(理入行入)이라. 먼저 분명히 바른 인식을 이론적인 체계를 다 세워 놓고서 그때그때 이론적인 체계에 맞게 공부를 해야 생명의 낭비를 않고서 공부가 속 빠른 것입니다. 달마 스님, 2조 혜가(慧可) 스님, 3조 승찬(僧瓚) 스님, 그 분들의 어록(語錄)도 간간히 있지만 아주 빈약합니다. 내용이 빈약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그 양(量)이 빈약합니다. 그러나 4조 도신(道信) 스님의 어록은 상당히 양이 많습니다. 그 대요를 보면 이입행입(理入行入)이란 이입(二入)의 도리와 똑 같은 내용이 다만 표현을 달리했습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는 문수반야경(文殊般若經)에 있는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닦으라고 하였다는 말입니다.


4조 도신 스님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 보면 있습니다.

5조 홍인(弘忍) 스님도 그랬습니다. 또 6조 혜능(慧能) 스님은 단경 부촉품(付囑品)에서 그대들 일반 중생들이 부처님의 일체종지(一切種智)을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닦아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우리 공부하신 분들은 제가 지금 말씀 한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정도는 외워 두셔야 나중에 공부를 하실 때에 주저하지 않고 또 헛된 힘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이입행입을 말씀 드렸지만 이입(理入)은 다스릴 리(理)자, 들 입(入)자, 이치(理致)로 해서 먼저 알아 놓고 하는 것, 그 다음에는 이치를 알아 놓은 뒤에 이치에 입각해서 우리가 실천하는 행위를 한단 말입니다. 실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입(行入)입니다. 그와 의미가 비슷하게 일상삼매(一相三昧)라, 이것은 일체 존재가 모두가 다 하나의 도리, 상(相)이 둘이나 셋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一相)이라. 하나의 상, 하나의 실상(實相)이라, 천지우주(天地宇宙)는 하나의 실상(實相)인 것입니다. 하나의 실상인 도리를 우리가 느끼고 납득하는 것이 바로 일상삼매입니다. 나를 보나 너를 보나 또는 산을 보나 물을 보나 또는 미움을 보나 무엇을 보나 모두가 다 진여불성, 이것도 역시 제법의 실상이구나, 이와 같이 일체 존재를 불성으로 보고 실상으로 본단 말입니다.


그 다음 일행삼매(一行三昧)라. 일행삼매는 무엇인가 하면 일상삼매, 즉 우주를 하나로 보는 그런 경계를 우리가 지속적으로 나간단 말입니다.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공부해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서 일행삼매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간추리면 정혜쌍수(定慧雙修)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같이 아울러서 닦는 것입니다. 또 정혜균등(定慧均等)이라, 선정과 지혜가 균등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도리가 우리 공부인 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도리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생명을 걸고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정혜균등이라, 정혜쌍수라, 이런 도리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정(定)과 혜(慧)가, -정(定) 이것은 선정(禪定)을 말하기 때문에 일행삼매(一行三昧)에 해당하고, 또 혜(慧) 이것은 참다운 지혜(智慧), 즉 반야지혜(般若智慧)를 말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천지가 오직 하나의 도리이다. 그래서 일상삼매(一相三昧)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런 것이 같이 가지런히 갖추어져야 우리 마음의 번뇌가 빨리 녹아집니다. 그건 왜 그러는 것인가? 왜 그런가 하면 우리 마음의 본심(本心)은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다 같이 아울러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본래적으로 정과 혜를 원래 갖추고 있습니다. 지혜만 있고서 선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혜도 원만히 또는 선정도 원만히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혜만 닦고 선정이 없으면 공부가 잘 계합이 안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우리 마음자리, 불성자리가 지혜와 자비가 또 지혜와 선정이 온전히 갖추고 있어서 우리 공부하는 것도 거기에 걸맞게 균등히 나아가야 계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인 들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 공부가 치우침이 없이 반반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반하게 못 나아가면 우리 몸도 그때는 괴롭습니다. 몸과 마음이 절대로 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반반하면 몸도 개운하여 좋고, 몸도 아주 유쾌합니다. 정과 혜가 쌍수가 되어서 정과 혜가 일상삼매와 일행삼매가 같이 가지런히 나아갈 때는 그때는 항시 몸도 마음도 가볍고 하늘에 뜬 기분입니다. 아! 내 몸이 지금 내 발이 지금 땅에 디뎌 있는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볍단 말입니다. 정말로 한 치도 틀림없이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우리 마음 따라서 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