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사와 동다송(東茶頌)
'차(茶)' 이야기를 꺼낼 때 초의선사와 '동다송(東茶頌)'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중국에는 육우의 '다경(茶經)'이 있으면 한국에는 '동다송'이 있다고 한다. 이는 곧 '한국의 다경(茶經)'이라고 할 수 있는 '차의 전문서'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대선사이자 한국 다도의 중흥조(中興祖)인 다성(茶聖)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는 속성이 장(張)씨요, 자는 중부(仲孚), 이름은 의순(意恂)이며 법호가 초의(草衣)다. 그밖에 해옹, 자우산방, 자하도인, 일지암이라고 했으며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대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는 정조10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나 순조·헌종·철종·고종 3년(81세 입적)에 이르기까지 승려로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아암 혜장, 자하 신위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유불의 경계를 넘어 교유했다.
선사의 저서로 '일지암시고', '일지암문집', '초의선과', '선문사변만어', '동다송', '다신전' 등이 있다. 다신전(茶神傳)은 차 생활에 필요한 지침서로서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의 보관, 물 끓이는 법, 차 끓이는 법, 차 마시는 법, 차의 색깔, 향기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나이 43세(1828년) 여름, 지리산 칠불선원(七佛禪院)에 갔다가 그곳에서 중국의 '만보전서(萬寶全書)'라는 백과사전 속에 수록되어 있는 '채다론(採茶論)'의 원문을 초출(抄出)했다. 그 2년 뒤인 경인년 봄에 사원에서 차를 알고자 하는 이가 많아 책명을 '다신전(茶神傳)'이라 하고 발문(跋文)을 달아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한편 '동다송'은 그의 나이 52세(1837년) 되던 해 봄 다도를 묻는 해거도인 홍현주(정조임금의 사위)에게 저술해(여름에 완성함) 보낸 내용으로 '우리나라 차를 찬송'하는 492자의 칠언시(七言詩)로 쓴 다서(茶書)이다.
특히 초의스님은 중국차보다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을 일깨웠다. 차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어 차를 만들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덖고 건조시키는 조다법(造茶法)으로 만든 우리 차의 색·향·미가 뛰어나다고 칭송했고, 중국 다서(茶書)들과 각종 고사들을 인용하고 상세하게 주석을 달았으며 사원의 선(禪) 수행을 차와 일치시키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집약시켰다.
이러한 '동다송'의 대의(大意)를 세 가지로 요약해본다. 첫째, 차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좋은 약과 같은 것이니 차를 마시도록 해라. 둘째, 우리나라 차는 중국차에 비교해 약효나 그 맛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육안차(六安茶)의 맛이나 몽산차(蒙山茶)의 약효를 함께 겸비하고 있다. 셋째, 차에는 현묘(玄妙)하고 지극(至極)한 경지가 있어 다도(茶道)라고 한다.
초의선사는 조선 정조대에 태어나 세수 81세(고종 3년), 법랍 65세를 일기로 입적하였고, 다산 정약용은 76세, 선사와 동갑나기였던 추사 김정희는 71세로 각각 생을 마쳤다. 당대 교유하였던 세 분은 모두 지극히 차를 사랑하였던 다인(茶人)이었으니 그것은 분명 차의 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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