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경주/테마산행1.남산(494m)
일 시: 2011.4.9.(맑음)
위 치: 경북 경주시 인왕동, 탑동, 배동, 내남면
출발지: 사당역(8일23시.서울.무박)
코 스: 용장골- 설잠교- 용장사지- 용장사곡- 금오산- 상선암- 삼릉
무박으로 남산 산행과
대릉원, 천마총, 반월성, 안압지, 보문단지...
입장료는 옵션이지만 이런 환상적인 테마코스가 어디 있을까?
무슨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 반월성, 보문단지에 벚꽃만 유채밭 위에
활짝 피어준다면 하면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더없이
행복에 취하여 혼자서 흥분한다.
진해 벚꽃 군항재가 시작되면서
과연 9일 날 경주에도 벚꽃은 피어줄까 전전긍긍하며
이삼일 전부턴 하루에 몇 번씩 경주벚꽃이 인터넷에 올라왔나 검색을 하지만
감탄이 나오는 경화역의 벚꽃 터널만 멋지게 올라온다.
내년엔 기차여행으로 가볼 계획이다.
새벽 4시에 도착하여 주위를 보았지만
벚꽃은 이제 망울이 터지고 있어 오늘 벚꽃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실망 스럽지만 해장국 묵 밥으로 아침을 먹곤 6시에
산행 들머리인 용장골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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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골
세계에서 가장 높고 지붕 없는
보물관 남산의 삼층석탑을 꼭 보고 싶었는데
오늘 산행코스에선 제외됐다는 대장님 말씀에 섭섭했지만 혼자서
갈 수 도 없어 접고 있었는데 대장님이 어느 부부가 그쪽으로 올라가니 가고 싶으면 따라가란다.
산행 코스는 많이 짧아지지만 산행이야 자주 하는 것이니 오늘은 유적지에 온 만큼 보물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다.
두 분이 더 합류되어 5섯명이 B 코스가 된 셈이다.
용장골은 조선 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던 곳이란다
2
김시습의 법호로 지은 설잠교
서라벌의 진산(鎭山)격인 경주 남산은
예로부터 '절집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는 말이 따를 정도로
산사와 문화유적이 즐비한 문명의 공간이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을 사이에 두고
사방으로 펼쳐진 능선 골짜기에는 왕릉이 13기, 절터가 147곳이나 있다. 또 불상은 118기, 탑이 96기 등 문화유적의
수가 모두 670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유적이 산재한 노천 박물관은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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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진달래가 활짝 피어 반갑게 맞이해주는 아침,
여유롭고 기분도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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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 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大賢)과 깊이 관련된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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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 광배와 몸 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아직 판독은 어려우나 글자가 10자 새겨져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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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가 장관이다.
무박 산행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다.
아무리봐도 놀라운 신의 조화에 신비로움만 더해가는 풍경이다.
구속 없는 시간에 자유로움, 또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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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졌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 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 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 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위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 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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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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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경주 남산.
그곳에는 아직도 신라인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남산을 기단으로 삼아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별칭이 따르는 '용장 사지 석탑' 아래 서면 서라벌의 경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경북 경주 남산은 신라의 흥망성쇠를 묵묵하게 지켜봤다.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다 보니
‘노천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어
산 전체가 사적 31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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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소나무숲 길은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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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주봉 금오봉
주봉인 금오봉에 도착하니
아직도 운해는 바다를 이루고 있어 혼자서
사진 우측으로 내려가 사진 몇 장을 담고 올라와 과일도 나누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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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구름이 서서히 걷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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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선 선명하지 않지만
마애석가여래좌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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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 당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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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58호
자연암반을 파내어 광배(光背)로 삼고
마애불을 새겼는데 불상의 머리 부분은 선각이 아닌
고부조(高浮彫)의 높은 돋을새김인 입체에 가깝게 새겼고, 몸은 선각(線刻)으로 표현하여
마치 바위 속에서 홀연히 솟아 나온듯한 모습이다.
석불은 대불이며 이는 남산에 현존하는
석불 중 두 번째로 큰 석불이다.(높이 5.2m, 너비 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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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상선암
상선암에 도착하여 쉬고 있으니
스님이신지 모르지만 30여 가지 약초를 끓여 달인 것이라면서
한 잔씩 주셨는데 약간 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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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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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 석불 좌상/보물 666호
일명 ‘얼음골’이라고 부르는 삼릉 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자리 잡고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옷은 양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 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 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 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 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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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앞뒤로 솟은 이들 바위는 높이가 4m정도인데,
폭이 앞에 있는 것은4m 가량 되고, 뒤에 있는 것은7m 가량으로 더 넓다.
불상은 정으로 쪼아 만들어낸 조각이라기보다는 먹을 듬뿍 찍은 붓으로 화선지에
쓱쓱 그려낸 그림에 더 가까워 보일 정도로
선적인 미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바위에 세 불상씩 두 개의 바위에
육존 불이 새겨져 있었는데 뚜렷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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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 바위에 그려진 삼존불의
본존은 서 있고 좌우 협시보살은 앉아 있다.
본존의 높이는 2.65m, 협시보살의 높이는 1.8m 정도이다.
석가모니불로 보이는 본존은 오른손을 올려 들고 왼손을 배에 대고 있으며,
협시하는 보살은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협시보살이 두 손에
모아 쥐고 있는 것이 꽃인지 다기(茶器)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뒤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자연 암석 위로는 길게 홈을 파놓았는데, 빗물이 마애불 위로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배수로로 보인다. 긴 돌 홈 바로 앞에는 전실(前室)을 씌웠던
흔적으로 여겨지는 작은 홈도 양쪽에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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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이 부처님은 목도 없고 손과 무릎도
잘린 상태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자연스러운 옷 주름과 매듭과 장식의 조각 수법이
섬세하고 자연스러움에 있다. 무척이나 단정한 매무새를 하고 있는데 가사 끈과 매듭 장식은
신라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상체의 법의가 이렇듯 정성을 다해
아름다운데 부처님의 얼굴 모습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자비로운 모습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이유로 불상이
이렇듯 파괴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불상을 파괴한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은 지워버릴 수 없었다.
목 없는 부처님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현재의 자리보다 30m 아래 계곡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후 현재의 남산 금오봉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바로 옆 큰 바위를 대좌 삼아 옮겨 놓았다고 한다.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작은 등산로를 따라 30m 정도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면 큰 바위에 관음보살상도 함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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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관음보살상/유형문화재 제19호
삼릉 골 입구의 석조여래좌상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기둥처럼 솟은 큰 바위에 관음보살이
자애로운 미소를 남산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 보살상은 키는
여자 어른의 키 높이인 1.5m 정도이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있는데 화불인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입술 부분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일부러 채색한 것이 아니라
바위의 붉은색을 그대로 살려서 입술 부분을 조각한 것이라고 하니
조상의 슬기와 지혜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관음보살은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는데,
목걸이를 하고 허리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다리에 각각 U자
모양으로 드리우고 있다.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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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입술에 마애관음보살상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 마애관음보살은
기둥 같은 돌에 돋을새김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새김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얼굴 부분과 수인은 다른 곳에 비해 뚜렷하게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설법 인을 하고 있으며, 왼쪽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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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산지점인 삼릉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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