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백의 새 / 박상천
사람도 아니고 새도 아닌
아니, 사람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한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보면
슬퍼진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다
멈추고만 사람 같기도 하고
날개가 상해 날지 못하는 새 같기도 한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러한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러한 새가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또다시 슬퍼진다.
장화백이 세상을 떠난 이후
화폭 속의 그들이
자꾸만 화폭 밖으로 빠져 나와
밤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자꾸 슬퍼진다.
- 시집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문학아카데미,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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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단순함의 미학'이란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화가이다. 그의 작품엔 가족, 달, 나무, 새 등 일상적인 이미지가 소박하고 정감 있게 표현돼 단순한 삶을 추구했던 작가의 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작은 화폭 속 동화 같은 그림에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원색의 미감이 높은 밀도의 균형감 위로 생생하게 흐른다. 그 속에는 자연을 벗하며 평생 그림과 술 밖에 모르고 유유자적하게 살았던 예술가의 순박한 삶이 엿보인다.
그의 삶의 철학은 명쾌했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라며 철저하게 자신을 연소시키고 간 사람이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장욱진이고 실제의 삶도 그러했다. 서울대 교수직을 내던지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로 내려가 혼자 그림에 빠지고 남는 시간은 술을 마셨다.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 장욱진은 일체의 권위와 형식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고 그것과 관련된 일화도 여럿 전해진다.
장욱진 화백의 '사람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한' 그림은 새와 나무를 그린 ‘야조도’이며, 그 새는 까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승달의 낭만과 보름달 같은 나무의 충만함 가운데 새를 그렸는데, 보는 이에 따라 힘차게 나는 새의 모양으로 볼 수도 있겠고, 시에서처럼 '날개가 상해 날지 못하는 새'의 슬픈 이미지로 느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시인은 인간의 비극적 숙명쯤으로 그림을 감상했다는 것인데, 간결하게 묘사된 새에서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라며 육신과 정신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데 다 써버린 장 화백을 떠올렸던 것일까.
지난겨울 장욱진 20주기 회고전에서 본 ‘자화상’이란 그림이 생각났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그린 것으로 시대적 위기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림이었다. 황금들녘에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신사가 오른손엔 가방을 왼손엔 우산을 들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그 뒤로는 강아지와 네 마리의 새가 따라간다. 그림에 빠진 절대 고독의 예술가는 그렇듯 눈부시면서도 야릇한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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