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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이라는 이름의 짐승-닥터 지바고/ 박미영

맑은물56 2011. 2. 19. 11:32

 

 

사랑이라는 이름의 짐승-닥터 지바고/ 박미영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짐승은

순백의 자작나무숲 노란 태양 아래 서식한다

반짝 언 호수를 녹이는 눈의 결정(結晶)

사뿐히 그 흰 꽃이며 꽃잎사귀 즈려밟고 와

흰 잔등 구부려 제 부은 발등 핥는다

 

사랑이라는 위험하디위험한 짐승은

흰 입김 쩍쩍 들러붙는 찬 유리(琉璃)의 습지

발랄라이카 칭칭 울리는 눈보라의 밤을 지나

침엽수림 어둡게 유예된 시간을 건너

제 몸 속 굴을 파고 웅크려 제 붉은 상처 핥는다

 

사랑이라는 나쁜 이름의 짐승은

모든 날개 떨어진 것들의 가슴에

오래된 질병처럼 흘러내리는 밀랍(蜜蠟)

가속에 가속에 가속이 붙은 제논의 뒷발목

너덜거리는 곤두박질치고 말 달작지근한 모든 근육(筋肉)


-  <시와 창작> 2009년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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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러시아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가 남긴 유일한 장편 소설을 영화화한 <닥터 지바고>에 대한 감상으로 설원의 차가운 기억과 사랑의 이미지에 의존해 쓴 작품인 것 같다. 영화는 사랑과 혁명을 다루고 있으나 시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혁명의 한 복판 위험한 상황에서 지바고는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라라와의 사랑은 다시 시작되어 타오른다. 기차는 자주 멈추었고 순백의 자작나무 숲 속에서 짐승이 울부짖는데 눈은 계속 내렸다. 그 속에서 ‘제 부은 발등을 핥고’ ‘제 붉은 상처를 핥는다’

 

 사랑은 위험하고 치명적이지만 결국 아름다운 짐승일 수밖에 없다. 숭고하게 지켜내는 과정이 그렇고, 쟁취하기 위해 모든 걸 바칠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기에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은 인류 보편의 주제이지 않은가. 장총을 메고 설원을 걷는 장면, ‘발랄라이카’란 러시아 전통 현악기의 경쾌하고도 애절한 선율이 가미된 모리스 자르의 음악, 이 시대 가뭇없이 지워져 가는 70미리 시네마스코프 영상, <닥터 지바고>는 거장 데이비드 린과 세기의 스타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사의 고전으로 기록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소설)의 소재 자체가 예민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유리 지바고는 라라와 토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 밀회를 지속한다. 그 뒤 빨치산에 잡혀 강제 입산을 당한 그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방황하다가 전차에서 내리는 라라를 보고 황급히 뛰어가다 심장마비로 절명한다. 그것으로 위험한 사랑은 마감된다. 영원한 러시아를 상징하는 여성 라라에 대한 사랑, 자연과의 시적 교감, 시대에 편승하고 때로는 낙오하면서 ‘가속에 가속이 붙은 제논의 뒷발목.’ 릴케의 ‘오, 이것은 존재치 않는 짐승’ ‘사람들은 알지 못했으면서도 그것을 사랑했다’란 구절이 뇌리로 휙 지나갔다.  

 

 

ACT4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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