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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49화 별증전쟁 전생 이야기 [우리도 부처님같이]

맑은물56 2011. 2. 7. 16:09

 

<제49화 별증전쟁 전생 이야기>

엎질러진 물

 

石橋 백두현

 

먼 옛날이었습니다. 어느 갯마을에 강노인이라는 부자가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고기잡이를 했지만 강노인은 무역을 해서 매우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무역을 할 때 데리고 다니는 사람, 집안일을 돕는 사람 등 하인들도 여럿을 두고 있었습니다.

강노인은 정이 많았습니다. 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하인들에게도 잘 해주었습니다.

그런 강노인에게는 외동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마음이 여리고 동정심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처럼 어려운 사람을 보면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강노인은 그런 아들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은 아들이 사람을 너무 믿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남을 의심하는 것도 나쁘지만 너무 믿어서도 안 된다.”

젊어서부터 무역을 해온 아버지는 믿었던 사람에게 속아서 큰 손해를 본 일도 있고, 도와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았습니다.

강노인은 마음이 착하기만 한 아들이 장차 집안 살림을 맡게 되면 남에게 속기나 하고 이용만 당할까봐 걱정이었습니다.

자기는 젊어서부터 장사꾼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정이 메마르고 아귀다툼을 하는 세상에서도 남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고 살아왔지만 아들은 그러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인들을 잘 거느릴 수 있고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으며, 장사를 잘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쳤습니다.

바다 건너 먼 나라로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물건을 정직하게 사고팔면서도 이득을 많이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했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기대대로 훌륭한 장사꾼으로 자랐습니다.

“아버지, 이젠 제 혼자 힘으로도 할 수 있으니, 저를 믿어주세요.”

“그래 알았다.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 중에는 사기꾼이 많으니까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또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처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니까 여러 곳에서 청혼이 들어와도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느리는 아들만큼 마음이 고우면서도 재산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해.”

평생 장사를 해온 강노인은 세상에는 사기꾼, 도둑이나 불량배 같은 나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가 착하다는 처녀를 봐도 그 속내를 알 수 없어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보게 그 처녀는 내가 잘 아는데, 착하고 정직하기가 비길 데 없네.”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네. 아무래도 나는 믿음이 가지 않네.”

좋은 처녀가 추천되어도 강노인은 믿고 살림을 맡길 수는 없을 것 같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처녀도 가면을 써서 그렇게 보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때 가까이 지내는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두메마을에 김선비에게 훌륭한 딸이 있다니, 한 번 만나 보기나 하라고 했습니다.

“김선비는 어지러운 세상이 싫어서 두메로 들어가 책을 읽으며 농사를 짓고 산다더군.”

“어지러운 세상이 싫어서 두메로 들어가 사는 선비라고?”

“그렇다네. 그래서 하나뿐인 딸도 복잡한 세상일에는 물들지 않도록 키웠다더군.”

그런 처녀라면 자기가 모은 재산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착하고 마음씨 고운 아들도 좋아하게 될 처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노인은 친구에게 김선비와 그 처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언제 선비에게 연락을 해서 만날 수 있도록 해주게나.”

“내가 며칠 내로 다녀오겠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 때 하세.”

강노인의 친구는 빠른 시일 내로 두메마을 김선비를 만나보고 오겠다며 돌아갔습니다.

 

두메마을의 처녀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얼굴도 예쁜데다가 타락한 세상이 싫어서 두메로 와서 학문과 농사일로 사는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란만큼 풀잎처럼 순수하고 들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아버지 김선비도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어 좋은 사윗감을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내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줄 총각을 찾아야 할 텐데.”

선비의 이웃에는 진심으로 딸을 좋아하는 가난한 총각이 살고 있었지만 김선비는 그 총각에게 딸을 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선비 자신은 혼탁한 세상이 싫어서 두메생활에 만족했지만 딸은 이 두메를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갯마을로부터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선비님, 갯마을에서 강노인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강노인이라면 그 부자노인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 강노인께서 선비님의 딸을 며느리로 맞고 싶다고 하며 저를 보냈습니다. 선비님이 허락하시면 재산도 나눠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뭐요, 재산을 나눠줄 수 있다고요? 그런 소리를 하려면 아예 가시오.”

“아,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해본 소리입니다. 강노인은 다만 선비님을 존경하고 따님의 훌륭함을 알고 있기에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할 뿐입니다.”

“저는 많은 재산보다도 믿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요."

“강노인은 물론이고, 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딸에게 평생의 반려자로 따뜻한 사랑을 줄 수 있다면 혼인을 허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강노인이 이리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날, 강노인은 두메마을로 김선비를 찾아갔습니다.

“따님을 저의 며느리로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드님이 제 딸을 행복하게 해주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겠습니다.”

강노인은 그 자리에서 결혼식 날짜까지 약속하고 갯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 강노인의 집에서는 결혼식 준비로 바빴습니다. 옷감을 사오고 음식을 만들고 새살림을 차릴 방도 꾸몄습니다.

결혼식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강노인의 머리에는 의심과 함께 욕심이 떠올랐습니다. 이왕이면 정한 날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해진 결혼식 날에 의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날이 결혼식 날짜로 정말 제일 좋은 날일까? 그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까?”

기왕에 어렵게 며느릿감을 구했으니 결혼식 날도 최고의 날로 하고 싶었습니다.

강노인은 신부 아버지 김선비와의 약속을 무시하고 이웃마을에서 제일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찾아갔습니다.

"다가오는 보름날, 며느리를 맞기로 했는데 좋은 날인지 봐 주시오."

점쟁이는 부자인 강노인을 알아보고 돈을 듬뿍 뜯어낼 궁리를 했습니다.

“강부자 어른의 혼사라면 최고의 날을 정해야지요. 가만 그런데 이건?”

“왜 그럽니까?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다가오는 보름날은 나쁜 날이오. 그날 결혼하면 큰 화를 당하게 될 거요."

“그날은 나쁘다고요? 날짜가 좋다고 했는데…….”

“누가 이런 날을 좋다고 했습니까?”

“바로 처녀의 아버지 김선비입니다.”

“평생 두메에서 책만 읽은 샌님이 무얼 안다고 그럽니까?”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화를 면하려면 산신령께 제사를 지내고 따로 날짜를 잡아야 하오"

그리고 점쟁이는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 날까봐 김선비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점쟁이의 말을 믿은 강노인은 소를 잡아 제사상을 성대하게 차리고 점쟁이에게 많은 금화를 바쳤습니다.

점쟁이는 제사를 지내는 척하고 산신령의 계시를 받았다며 처음 약속한 결혼식 날의 다음날 결혼식을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강노인은 김선비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결혼식 날짜를 바꾸는 것이 너무도 꺼림직했지만 보름날에 결혼을 하면 큰 화를 당한다니 어쩔 수 없이 점쟁이의 말을 따랐습니다.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김선비네 집에서는 아침 일찍 마당에 잔칫상을 차려놓고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술과 떡을 마련해 놓고 이웃사람들도 모두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일이요? 신랑이 오지 않으니.”

“강노인네 같은 부자가 어찌 가난뱅이 김선비네와 혼사를 맺는가 했지.”

“이젠 틀어진 일이야. 처녀만 불쌍하지.”

사람들은 이렇게 수근거렸습니다. 김선비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기다렸습니다.

해가 지도록 신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김선비가 말했습니다.

"딸을 넓은 곳으로 시집보내 편하게 살게 하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 화를 불렀구나. 저들은 정말로 믿음이 안가는 사람들이다."

“그럼 어떻게 하겠습니까? 갯마을에 연락이라도 해봐야지요? 무슨 일이 있는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결혼식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자식을 평생 맡기겠습니까? 다른 길을 찾아야지요.”

김선비는 평소 자기 딸을 좋아하던 가난한 마을 총각을 불렀습니다.

“역시 내 딸을 평생동안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은 자네인 것 같네. 준비는 다 되었으니, 자네를 내 사위로 삼겠네.”

김선비는 자기 딸을 가난한 마을 총각과 결혼식을 올리게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이해를 한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다음날 결혼식 준비를 해가지고 김선비네 집으로 온 강노인과 그를 따라온 많은 사람들은 처녀가 가난한 마을 총각과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하루 사이에 딸을 다른 곳으로 시집보낸단 말이오.

우리는 따로 좋은 날을 잡느라고 얼마나 많은 돈을 쓴 줄 아시오? 결혼식을 무르든지 아니면 손해를 변상하시오"

강노인과 그의 하인들은 마구 소리를 지르며 김선비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김선비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이제 와서 이런다고 날짜를 어제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이미 결혼한 딸을 어떻게 처녀로 되돌릴 수 있겠소.

사람 사이의 믿음이란 한 번 저버리면 엎질러진 물이라 되돌릴 수 없는 것이오."

강노인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생의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부정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어떤 사명외도(邪命外道)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고쳐 쓴 것입니다,— <제49화 별증전쟁 전생 이야기>

 

<백두현>

1963년 충북 청원에서 나서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계간<자유문학>에 동시가 천료되고 계간 <선수필> 신인문학상을 받았으며, 제4회 불교아동문학상 작가상과 제 16회 청소년문화예술축전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았다.

출처 : 석교가 열어가는 세상
글쓴이 : 石橋/100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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