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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아픔 오롯이 담긴 태백산맥문학관

맑은물56 2010. 8. 18. 20:45

분단의 아픔 오롯이 담긴 태백산맥문학관

세계일보 | 입력 2010.06.17 17:26 |

화순·고흥·순천 잇는 요지 육해산물 총집산지
평일 장터도 시끌벅적


6월의 의미는 냉전의 아픔이 남아있는 북녘 땅 언저리에서만 되새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던 날 전남 보성의 벌교읍에 다녀왔다.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이념과 분단 때문에 고통을 겪은 민초들의 삶을 녹인 소설 태백산맥(조정래 작)의 배경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태백산맥을 제대로 읽거나 민족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소설의 배경이 된 벌교를 살짝이나마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 본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조성된 '조정래 등산길'이 빗물을 머금었다. 등산길은 태백산맥의 주요 배경인 제석산에 마련돼 있다.

녹차로 유명한 보성, 꼬막으로 이름난 벌교. 어느 곳이 더 알려졌고, 매력을 줄까. 보성과 벌교 모두 행정구역으로는 보성군에 속한다. 그러니 응당 보성이 더 알려졌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벌교 사람들은 이 견해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보성군에 속하게 됐지만, 벌교는 오래전부터 특유의 자부심이 있다. 역전에서 만난 주민들이 이를 확인해 줬다. 발전을 멈춘 고향이 야속할 것도 같은데 그런 속내는 보이지 않는다.

"보성군 벌교읍이든, 그냥 벌교든지 큰 차이는 없지 뭐. 그래도 벌교는 단순한 읍이 아니야. 전남 동부 지역에서는 비중 있는 곳이었지. 굳이 알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잖아. 꼭 꼬막이나 소설 태백산맥 때문만은 아니야. 대종교 창시자, 작곡가 등 이름난 사람도 많이 나왔다고."





◇육해산물과 사람들이 모이는 벌교에는 갯벌도 있다. 이 갯벌을 가로질러 벌교가 자랑하는 홍교가 들어서 있다.

그러고 보니, 벌교는 오래전부터 전남 동부의 큰 도회지인 순천이나 여수와 동급으로 인정받은 듯싶다. 오죽했으면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을까. 벌교는 화순·고흥·순천을 잇는 교통 요지로, 각종 생산물이 모였던 곳이다.

이런 여건 덕분에 평일에도 늘 장터가 형성된다. 인근 주민들이 평상시에도 많이 찾지만 5일 장(4·9일)에는 시끌벅적한 좌판을 더 크게 펼친다. 이렇듯 사람과 물자가 몰리는 교통 요지였으니, 역전에는 자연 주먹깨나 쓴다는 이들이 모이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세상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6월의 벌교는 거센 주먹의 추억은 고사하고, 차밭의 향기도 꼬막의 쫄깃쫄깃한 맛도 주지 못한다. 그 맛과 향은 기억 속으로 봉인된다. 이때는 오히려 이념대결의 진한 여진과 아픔이 느껴진다. 역전에서 식사를 하고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향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현부자네.

문학관은 소설 첫 장면의 배경이 된 곳에 들어서 있다. 1948년 늦가을 정화섭이 무당 소화를 만나기 위해 길을 가던 지점인 제석산 자락이다. 제석산 자락은 소설 속에서 현부자의 제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 가을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과거가 문학관에 온전히 담겨있다. 어느 때보다도 남북 간 대립의 칼날이 날카로워진 2010년이어서일까. 문학관을 앞에 두고 제석산으로 통하는 '조정래 등산길'이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하다. "열정과 용기 그리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우리 현대사 물줄기의 궤적을 제대로 그려내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오늘의 역사에 올바르게 이어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조정래 선생은 이즈음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면서 제석산을 내려오니, 연꽃이 가득한 연못이 눈에 띈다. 문학관 인근 연못에 가득한 연꽃의 모습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연못 중간에 나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이들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벌교에서 태백산맥보다 먼저 알려진 게 홍교다. 벌교(筏橋)를 풀이하면 '뗏목다리'다. 보물 제304호인 홍교(虹橋)는 벌교의 의미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벌교의 홍교는 한반도에 남아있는 홍교 중에서 가장 크다. 뗏목으로 된 다리는 세 칸짜리 무지개 모양의 다리가 끝나는 부분에서 확인된다. 홍교 밑에 설치한 용머리도 남아있다.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예쁜 게 홍교다.

벌교(보성)=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