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스크랩] 영산회상 (靈山會上)

맑은물56 2010. 6. 18. 18:59

영산회상 (靈山會上) 


[연속듣기]


        ※ 개별듣기 ※
        [상령산(上靈山)]


        [중령산 (中靈山)]


        [세령산 (細靈山)]


        [가락덜이]


        [삼현 도드리]


        [하현 도드리]


        [염불 도드리]


        [타 령]


        [군 악]


    본래 영산회상이라 하면 현악영산회상(絃樂靈山會相)·
    관악영산회상(管樂靈山會相 : 삼현영산회상)·
    평조회상(平調會相)을 모두 포함하나
    흔히 현악영산회상만을 뜻하기도 한다.

    현악영산회상은 영산회상의 여러 곡들 가운데
    본곡에 해당하는 것으로 관악영산회상이나
    평조회상은 이 곡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하고 중광지곡(重光之曲)이라고도 한다.

    주로 조선 후기 지방 선비나 부유한 중인 출신의
    풍류객에 의해 전승·발전되었다.

    악기편성은 거문고·가야금·해금·단소·세피리·대금·장구로 편성되고
    경우에 따라 양금이 포함되기도 한다.

    상영산(上靈山)·중영산(中靈山)·세영산(細靈山)·
    가락덜이[加樂除只]·삼현도들이[三絃還入]·
    하현도들이[下絃還入]·염불도들이[念佛還入]·
    타령(打令)·군악(軍樂) 등 모두 9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산회상은 본래 불교음악인데 영산은 영취산(靈鷲山)을 가리키며
    그곳은 석가여래가 중생을 구도하고자 설법하던 곳이다.
    불자들이 영취산에 모여든 것을 가리켜 영산회(靈山會)라 했다.

    이 영산회에서 불보살의 자비와 성덕을 찬양한 가사
    〈영산회상불보살 靈山會相佛菩薩〉에 곡을 얹어 부른 것이 영산회상이다.
    이 곡은 지금의 상영산에 해당하며 영산회상의 원곡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음악으로 출발했던 영산회상은 민간에 전해지면서 악곡도 여러 형태로 변화했다.

    〈현금신증가령 玄琴新證假令〉(1680)에 보면 17세기 후반에
    이미 〈영산회상불보살〉의 가사를 담은 성악곡이었던
    영산회상이 가사가 떨어져나가면서 기악곡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불교음악이던 영산회상이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원곡에서 차츰 변화되어 다양한 변주곡이 생긴 것이다.

    영산회상갑탄(靈山會相甲彈)은 거문고의 유현 4괘로 연주되던 것을
    유현 7괘로 높게 변주시킨 곡이다.

    1779년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은보 漁隱譜〉에 기록되어 있고
    지금의 중영산에 해당된다.

    〈한금신보 韓琴新譜〉에는 영산회상·영산회상환입·
    영산회상가락덜이라는 악곡이 기보되어 있는데,

    영산회상환입과 영산회상가락덜이라는 새로운 악곡이 파생되고,
    17세기말에 기악화하기 시작한 영산회상은
    18세기에는 민간의 풍류객들에게도 널리 연주되었다.
    〈유예지 遊藝志〉는 18세기 영산회상의
    변주곡에 대해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여기에 기보되어 있는 영산회상은 지금의 상영산에 해당하고,
    세영산은 중영산, 영산회상이층제지는 가락덜이,
    삼현환입은 지금의 삼현환입, 삼현환입이장두(三絃還入二章頭)·
    삼현환입사장말(三絃還入四章末)은 오늘날 하현환입의 바탕이 된 듯하다.

    또 염불타령과 육자염불은 지금의 염불환입의 바탕이 되었고,
    타령·군악유입타령(軍樂流入打令)·우조타령(羽調打令)은
    타령의 바탕이 되었으며,
    군악타령은 군악의 바탕이 되었다.

    19세기의 영산회상은 오늘날의 모습과 거의 비슷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데
    〈삼죽금보 三竹琴譜〉의 영산회상·중영산·소영산·가락덜이·
    환입·염불·타령·군악으로 지금의 영산회상 곡들의 명칭과 비슷하다.
    그뒤〈현금오음통론 玄琴五音統論〉(1886)에서는
    지금의 영산회상의 체계를 완전히 갖추었다..

    출처 : 불교명상음악과 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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