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 입학을 위해 쓴 수필
강영우 박사의 장남 진석군이 하버드, 스탠퍼드, 노스웨스턴 영재 의대 입학을 위해 쓴 수필로 읽는 이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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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은 많은 장난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마치 건축을 하는 공사장과도 같았다. 레고(lego)를 가지고 만든 빌딩과 자동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블록으로 만든 탑은 색칠하는 책 옆에 자랑스럽게 우뚝 서 있었다.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
"이제 잘 시간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방안에 있는 불이 꺼졌다. 무질서하게 어질러져 있는 장남감들을 용케 피해 침대를 찾아갔다.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 양손으로 목 아래를 받치고 어둠 속에서 허공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밤의 침묵이 나를 감싸주었다. 잠시 후 내 귀에 익숙한 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손이 점자책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였다. 다섯 살 된 조그만 몸은 포근하기만 한 세사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이불보 아래 편안히 자리잡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드럽고도 체면사의 기법을 닮은 듯한 아버지의 책 읽는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또박또박하고 부드럽게 읽어 주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유치원의 좁은 세계에서 사는 나를 멀고 먼 상상의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가곤 했다. 그러한 이야기 중에는 "거북이와 토끼",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도 있었다.
내 상상은 자유로웠다. 간간이 들려오는 아버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방해가 될 뿐이었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깊은 잠을 자게 된다. 이야기를 다 못들은 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이 깨면 잠자리에서 다시 그 이야기를 듣겠다는 기대와 동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아버지의 점자책을 자세히 보았다. 나의 선명한 상상의 뿌리인 그 책은 볼록볼록 튀어나온 점들이 페이지를 채웠을 뿐 그림 한 장 없었다. 점자 페이지 위에 손을 얹어 놓고 이리저리 더듬어 보며 아버지는 어떻게 그것을 읽으실까 생각해 보았으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아직껏 나는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실명으로 내가 잃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나는 쉽게 잠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안에 여기 저기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과 옷들이 방해할 수 없는 어둠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가 그 어둠 속에서 아버지와 나와 내 상상은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육안이 없이도 볼 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신 맹인 아버지를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두 눈을 뜬 내가 두 눈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안내자가 아니라 맹인인 아버지가 정안자인 내 인생을 안내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나도 성장하여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어 많이 변했다. 그러나 그러한 세월 속에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잠자리에서 읽어 주신 이야기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이다. 아마도 그 영향은 영원할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상상의 세계는 넓어졌고 창의력은 개발되었으며 비전은 선명해졌다. 또한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인간의 가치는 외적 준거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지극히 평범한 환경으로부터 귀중한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도 있고 통찰력을 얻을 수도 있다는 진리를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 맹인 아버지는 외모로 보면 장애인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는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더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고귀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함으로 터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로 인해 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도전하며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 건설에 기여할 의욕을 갖게 된 것이다. 비록 나는 아버지처럼 어둠속에서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그의 실명을 통해 나에게 주신 것은, 그리고 계속 앞으로도 나에게 주실 것은 미래를 바라보고 정진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지게 했으며, 내 상상에 불을 붙게 했으며, 인생을 이 세상에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는 풍족한 기회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이다.
[강영우/석은옥/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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