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백제금동대향로의 5악사 악기를 복원해 가슴 뿌듯합니다."
상상 속에 머물던 백제 악기들에 살아 있는 숨결을 불어넣은 이숙희 국립음악원 악기연구소 학예연구관(50)은 8일 감격에 겨운 모습이었다. 9일까지 이틀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리는 공연 `대백제의 숨결`을 준비하느라 그의 목소리엔 긴장감마저 서려 있었다.
이번 공연은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에 조각된 다섯 명의 악사가 연주하는 악기를 복원해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150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백제 선율이 드디어 깨어나는 자리다. 이숙희 연구관은 지난 1년여 복원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 출토 이후 백제 것이냐 중국 것이냐는 논쟁이 계속됐어요. 이 때문에 악기 복원이 지난해 4월에서야 시작됐습니다."
이번 공연에 선보이는 악기는 향로에 조각된 대로 완함, 배소, 북, 가로로 긴 현악기, 세로로 부는 단관악기(종적) 등 5개다. 그러나 실제 복원돼 무대에 오르는 악기는 3개다. 현악기는 줄을 몇 개로 할 것이냐는 검증 과정이 남아 있으며, 배소는 제작됐지만 연주에는 불편해 다른 악기로 대체했다.
"향로에 조각된 악사 한 명의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 복원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보이는 것과 문헌상의 괴리로 절충해야 했어요."
백제 현악기는 전승된 것이 없어 고증에 어려움이 작지 않다. 결국 상상력을 입혀야만 악기 복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악기 `북`의 경우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향로를 유심히 바라보면 북을 치는 자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논란의 불씨다.
"북의 경우 타악기냐 관악기냐는 논쟁이 여전해 풍금과 아코디언 형태, 북, 목탁 등 세 가지 형태로 제작했고 세 가지 버전이 무대에 올라갑니다."
복원 과정에서 북 3개, 배소 2개, 종적 2개, 완함과 가로로 긴 현악기 각각 1개씩 모두 9개의 악기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다시 수정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다섯 악기에 대한 정체성 규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실제 제작에는 요즘 쓰는 대나무와 오동나무, 느티나무 등을 사용해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악기 복원의 원칙은 우선 보이는 대로 만들되 소리가 나야 하며 역사적 자료와 일치해야 한다. 이 연구관은 "다섯 악기의 성격을 학술적으로 좀 더 명확히 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악기 복원 작업과 별개로 이 악기를 사용한 작곡 작업도 병행했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되는 `영기`와 `백제의 꿈` 등은 모두 현대 작곡가들이 새롭게 만든 창작곡이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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