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감동을 주는 글

깡패밭

맑은물56 2010. 4. 9. 17:05

이글은 진동리 풀곷세상 펜션을 운영하시며 세쌍동이를 키우고 계신 풀잎님이 쓰신 글을 옮긴내용 입니다.

 

 

 

진동리 깊은 산 속에는 전설같은 이름을 가진 밭이 있다.
'깡패밭'

우리 집 뒷산 멀리에 있다는 '깡패밭'을  마음에만 두고 이제껏 가보지 않았던것은   이름이 나랑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올 봄
꽃보러 가는 산행길에
나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깡패밭'을 향해 길을 잡았다.
십 년을  깡패밭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며 산 덕분에
아마도
내게  깡패물이 다소간  들었나보다.

개울건너 양지뜸에 복수초, 길섶에 제비꽃, 괭이눈,
길가 돌틈에 처녀치마...

야생의 계곡사이 소로길을 따라 걷다가 '막치미'에서 능선을 탔다.
능선길에는 한계령풀들이 군락을 이루고 건강한 애기앉은부처싹들이 칼칼한 흙을 뚫고 소담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동그마한 모데미풀, 화사한 꿩의바람꽃, 애잔하도록 아리따운 현호색, 탱탱한 얼레지 꽃봉오리들 역시  기나긴 겨울잠을 깨고 일어나 장하디 장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숲 사이로 노란연기처럼 떠 있는 생강나무 곁을 지나 산을  오르는 길 ...
이리도 아름다운 산중에 '깡패밭'이라니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도무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기도 하고 ...

2시간여의 산행길...
동행해 주신 서래굴 성일스님께서 바로 저아래가 깡패밭이라는 말씀.

나는 엊그제 '깡패밭'을 찾을량으로 귀동냥만으로 이 능선까지 왔더랬다. 출발이 늦기도했지만 날씨도 흐려 시야가 안좋았던탓에 훗날을 기약하고 서둘러 하산을 했더랬다.
돌아올 길을 예정해 노란 리본을 매달아 놓았던 바로 그 끝지점. 지금내가 서있는 바로 이곳이 '강패밭' 코앞이었을 줄이야...^^

능선 한 줄기를 담박 내려서니
오메 이를 ...우짤까 ...
동그랗게 피어나는 꽃속에 내 몸이 살풋 내려앉은 이 느낌을 ...
여기가 '깡패밭'이라니 ...
멀리 아스레한 능선자락을  휘익 눈대중으로 가늠해 보니 "삼만평은 족히 될것"이라고 전해들은 넓이가 실감이 났다.

야트막한 나무들 사이로
얼레지를 비롯한 야생초들이 정처없이  시작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는
해발 일천고지 즈음의 분지'깡패밭'.
참으로 오묘하기도 하지...  물이 있다.  
왼쪽으로 작은 샘터엔 동의나물싹들이 올라오고
오른쪽  물길의 시원지가 되는 곳엔 제법 소리나는 물줄기가 골짜기를 향해 흘러내리고 있다.

둥그렇게 둘러쳐있는 능선들엔  활엽수들이 가득하고,  
여기 저기 산돼지들이 갈아엎은 흔적들은  여느 밭떼기에 북을 주기 그 이상이다.

오메, 오메, 이를 우짤까
나는 그만 그 넓은  꽃숲을 바라보며 잔잔한 기쁨에 빠져버렸다.

'깡패밭'이라 불리워진 덕분에
험악하게 느껴져서도, 무섭게 여겨져서도  ... 너는 이리 고요히 살아있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오늘 내가 너를 만나는구나"

깊은 산중 꽃숲이 내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시절  '낭도'라  불리우는 무리들과 더불어 살아본 적이 있었지. 그들은   모자엔 깃털을 꽂고 구름처럼 가뿐가뿐히 말을 몰아 이 숲을 뛰어놀곤 했었지.저 아래  샘터엔 솥단지가 걸리고 온 숲이 그들이 내는 차 향기에 취해 새벽이 들도록 이슬에 젖어  함께 춤추며 노래를 부르곤 했단다. "

"그래, 그랬었구나 "

꽃숲은 잠시 한숨을 쉬더니 나즈막한 소리로 내게 묻는다.

"   ... ..네 노래도 ,네가 지어준 내 이름도 나는 기억하는데 ...넌 ...혹시 잊은 거니?"

바람결에 꽃숲의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흔들리고
나는 두리번 두리번 변명거리를 찾는다.

성일스님께서  하산길로 잡으신 동북향의 '호랑이콧등'길.
만만치 않은 경사가 수영장의 미끄럼틀처럼 이어져있다.

강선리 개울을 건넜다.
맑고 찬란한 물을 건너며 꽃숲의 기억, 그  그림자들 조차도 살뜰히 씻기는 듯 하다.
비어진 가슴으로 오솔길을 걷노라니,
좌로 우로 돌틈에 길녘에 수천의  노루귀들이  솜털을 휘날리며 뽀얀 웃음을 짓는다.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작은 꽃들의 군무로 다시금 내가슴이 가득해진다.

아하, 또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도대체 오늘 내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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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오지산행지와 이웃지간 이면서 알려지지 않은 "깡패밭"

꼭 다녀와야할 숙제같은 그리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