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16. 월요일 저녁 7시30분 공연
<맨 앞석에서 직접 찍은 따끈한 사진입니다">
<주와 민>이라는 연극을 봤다.
연극이라는 매체가 참 오랜만이기도 했다.
연극이란 매체는 영화보다 더욱 관객과의 교감을 필요로 한다. 밀도도 깊고, 호흡도 깊다.
어디 한 번 보자, 하고 요즘 영화보듯 객석에 앉았다간 큰 코 다치기 쉽다.
그만큼, 연극은,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앉아야 한다.
너나 나나 평론가를 자처하며 어디 한 번 보자, 하고 요즘영화 보듯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조금 어렵고 호흡이 벅찰지도 모른다.
집 바로 근처에 미리내소극장이 처음 생겼을 때 아, 이런 작은 동네에 소극장을 차린 사람은
참, 꿈꾸는 사람이구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 그리고 공연하는 이들의 농밀한 마음가짐이
아주 작은 소극장 입구에서부터 솔솔 비어져나오는 듯 했다.
매일 집근처의 그 공간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그런데 오늘, 만났다. 두 주인공.
게다가, 2인 극이였다. 순전히 배우들의 역량이 이끌어가는, 배우의 힘을 가늠하는 작품이었다.
집중을 방해할까 하여, 기본적인 지식만 꿴채 관객석에 앉았다.
백지 상태에 제목만 쓴 관객의 내면을 어떻게 채울까, 그것이 극이 시작하기 전의 기대감이다.
<주와 민>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작품도, 줄거리가 흥미진진한 극도 아니다.
두 인물의,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을 관음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극이다.
장면의 전환도, 줄거리의 전환도 없다. 글로 치면 농축된 단편 하나다.
그 단편의 80분을 논스톱으로 이끌어가는 힘은, 오로지 두 배우의 호흡에 있었다.
도입부 5분만에 극의 성격을 파악하고는, 두 배우를 눈여겨 보았다.
두 개인의 언어의 충동과 충돌, 내뱉음과 받아치기,
아주 가쁜 호흡으로 두 배우는
끊임없이 말하고 반박하고 외면하고 슬퍼한다.
아주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각자의 편견과 상처에 의해 서로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여자는 순간의 이끌림은 인정하지만,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는 아주 많은 고민과 확신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의 미래를 그리고 앞서가는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남자는 순간의 열정도 확신에 의한 결정이라고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눈앞에 보이는 대로 마음껏 표현하고 사랑을 찬양하기에 오히려 여자로부터 그 마음을 의심받는다.
남자는 여자를 설득하고 사랑을 납득시키기 위해 애쓴다.
둘은 너무나도 다르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와 감정의 과잉이 이 극 속에는 넘쳐난다.
둘의 대화는 너무도 일상적으로 관객에게 되돌아온다.
정극이라는 무거움보다는 비속어를 포용한 일상적인 언어로 진행된다.
한번쯤은 경험했을만한 상황과, 나 혹은 주위 사람, 아니라면 홈드라마 같은 곳에서도 여러 번 들어봤음직한
너무나도 사실적인 대화의 연속이다.
두 배우는 작은 체구에 비해 놀랄 정도로 폭팔적인 음성으로 피터지게 싸우고, 밀어내고, 설득한다.
둘의 이야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개인적인 부분의 연장선에 있다.
우선, 두 배우의 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장 먼저 칭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두 배우의 성량이었다.
조금만 집중력이 떨어져도 금새 흐트러질 수 있는 극적인 대화극이었기에
80분 동안 감정의 굴곡을 조절하며 펼친 연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내공이 단단히 쌓이지 않는다면 하기 어려운 2인극을 선택한 두 배우의 용기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아마도 매 회 공연을 앞두고,
두 배우의 마음가짐은 소금에 단단히 절여진 생선처럼 결연할 것이다.
오늘의 공연에서는 구민주님이 컨디션이 흐트러지셨는지 실수를 좀 많이 하셨다. ^^
그래도 낭랑한 목소리와 어깨를 떠는 표현력은 대단하셨다.
호민님의 눈빛과 목소리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끄는 흡입력과 깊이가 있어,
좋은 배우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두 배우의 서로간의 신뢰와 믿음, 커뮤니케이션이 잘 조화를 이루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약간 아쉬운 것이 있다면,
<프랭키와 쟈니>라는 원작이 있긴 했지만 대본의 호흡이 조금만 더 다듬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원작이 2시간이 넘는 것이긴 했지만 여러 장소와 상황의 영상이 바뀌는 영화라는 매체와는 달리,
하나의 장소와 두 사람만의 인물로 끌어가는 연극에서는 적절한 리듬의 파도가 중요하다.
중첩되는 대사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극의 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20대 중반 이후의 공감대 선상에 있는 내용이기도 하기에,
젊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기에는 조금 무거운 감도 없지 않아 있다.
사랑의 상처와 언어의 미묘함을 이해하기에 서툰 사람들이라면 극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감정의 과잉보다는 쇼잉" 에서 공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 조금.
하지만 조마조마하게 극의 진행을 지켜보던 관객을 안심시킨,
두 배우의 연기가 빛나는 작품이었다.
매우 춥고, 싸늘했던 한겨울날씨의 월요일 저녁.
작고 소박한 미리내극장에서의 연극공연이 끝나고 두 배우와 함께 사진촬영을 했다.
두근두근한 시선으로 관객의 표정을 들여다보던 두 배우의 눈빛이 기억에 또렷하다.
무대 위에서 맨몸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마음껏 나누어주던 배우들의 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소박한 소극장에서, 소박한 수준의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작은 세계.
시간 여행을 간 듯,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미리내 소극장에서 오랜만에 감흥에 젖었다.
그네들의 다음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이상, 개인적인 한 관객의 개인적인 감상평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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