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추일서정/김광균

맑은물56 2009. 5. 15. 15:03

 

추일 서정(秋日抒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 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시어ㆍ시구 풀이
* 도룬(Thorn) : 폴란드의 도시 이름. 1231년에 건설된 고도(古都)로서, 뒤에 프로이센에 병합되었다가 제 1차 세계대전의 결과 폴란드에 귀속됨
* 근골(筋骨) : 근육과 뼈


출전 <인문 평론>(1940. 7)


작품개괄
-작가 김광균
-성격 회화적, 주지적
-출전 <인문 평론>(1940. 7)
-제재 가을날의 풍경
-주제 황량한 가을날의 고독감
-구성
1. 가을의 애상감, 공허감 (1∼3행)
2. 가을이 주는 소멸과 조락 (4∼7행)
3. 가을이 주는 고독감, 황량감 (8∼11행)
4. 황량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독한 화자 (12∼16행)
-표현
1. 시각적 이미지를 비유를 통해 형상화 함
2. 생경하고 과격한 비유의 연속으로 딱딱한 느낌을 줌


작품 해제
이 시는 제1행부터 제11행까지는 자연을 도시적, 문명적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하였고, 제12행부터 끝까지에서는 문명화된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심경이 묘사되어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문명에 대한 시인의 비판 의식을 엿보게 된다. 시적 화자의 눈에 비친 자연은 이미 자연의 모습을 상실한 채 문명화되어 있다. 지폐, 포화(砲火), 넥타이, 담배 연기, 급행 열차, 공장, 철책, 셀로판지(紙) 등으로 비유되는 자연은 시인으로 하여금 '황량한 생각'에 젖게 한다. 그래서 그는 문명의 황량함을 향해 '돌'을 던진다. 그것은 거짓된 문명의 파괴를 위해 던지는 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던지는 돌이다. 마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그 돌은 다만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갈 뿐이다.
이 시에서 드러나는 현대 문명의 모습은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하나로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낙엽을 망명 정부의 지폐에 비유하고, 길을 구겨진 넥타이라고 하는 등 파격적인 이미지의 결합이 당대에 획기적으로 신선했을 것이다.

 

반영론적 관점

 

이 시의 시대적 특징은 1930.40년대로 시문학파의 완성자인 김광균이 썼습니다. 이 시대에는 시의 순수성을 살리기 위한 기교주의 문학이 등장하여 시문학파의 계보를 이었는데 도시적이고 세련된 심미성을 추구하여 당시의 검열을 피하고 시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다. 검열이 심해지기 시작한 당시 이런 시는 검열의 망을 피해가기 좋았으니까요.

 

표현론적 관점

 

이 시는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구겨진 넥타이’, ‘담배 연기’와 같은 비유는 근대화된 서구 도시 문명에 대한 관심의 표상이며, ‘나무’와 ‘공장’을 각기 ‘근골’과 ‘흰 이빨’과 같은 기계적, 물질적 이미지로 비유한 것은 사회의 근대적 변화에 대한 감수성을 보여 주는 시어를 사용해 시인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효용론적 관점

 

이 시는 독자들에게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고독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여기서 시의 쓸쓸함과 고독감의 정서를 보지만 작가의 의도를 알려면 지적인식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절대론적 관점

 

이 시는 내재율의 율격을 가지고 연의 구분없이 써내려간 자유시입니다.특정형식이 없기 때문에 화자의 생각이 자유롭게 전달됩니다.

(특정형식이 없다보니 평가가 허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