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야기 / 茶와 禪
[18] 차문화를 나르던 옛길(茶馬古道)
세계의 언어 ‘차’를 나르는 문화동맥
중국의 운남성은 차의 고향이라 불린다.
차를 만들어 실어 나르던 기나긴 옛길이 그곳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이유다.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가 차를 빼놓고는 설명되지 않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한몫을 하리라.
운남성 남단에서 시작하는 차마고도(茶馬古道). 말 등에 실린 것은 차만이 아니었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문화가 함께 실려 온 세상 사람들과 만났다
차를 실어 나르던 이 옛길을 일러 보통 ‘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부르는데,
이 길은 차를 실어 나르던 길임과 아울러 차문화의 뼈대를 세워낸 길이기도 하다.
운남성의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부터 시작되어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남쪽으로는 태국과 베트남 및 말레이시아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광서성을 거쳐 광동성에 이르며,
북쪽으로는 쿤밍(昆明)을 거쳐 뤄양(洛陽)과 옌징(燕京, 오늘날의 베이징)에 이르고,
서북쪽으로는 멀리 아라비아와 유럽에까지 이르던 기나긴 길.
이 길은 차라는 물건만을 실어 나르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고 살아가던 이 지역의 소수민족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낸 것도 이 길이었다.
이런 묶음의 바탕에 차가 자리 잡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니,
이 길이 어찌 차를 중심으로 삼은 문화와 정신의 대동맥이라 하지 않을 것인가.
사흘이 멀다 않고 이어지는 차 상인의 행렬들,
이를 따르는 경호무인들과 이민족들의 무리들,
차는 각 민족의 문화와 다른 민족의 문화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고리였으며,
이 고리를 통해 사람살이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한편 그들만의 독자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음악과 음악이 섞이고, 그림과 그림이 만나며,
물건과 물건이 오고가면서, 말과 글자도 서로 얽히고 신앙과 축제의 양식도 섞였다.
마침내는 삶터를 옮겨가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게 되어 한 마을에서 서로 다른 민족이 더불어 살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세상, 차마고도를 통해 만나게 된 그들의 세상은 열린 세상이었다.
언어가 다른 이를 축복할 수 있게 되며,
종교가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되고,
다른 가락의 음악에 감각을 맡기면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보는 세계 보편의 언어는 차였다. 가장 큰 교통로는 차마고도였다.
더위를 이기게 해주던 시솽반나 다이족(族)의 차는 묘족(苗族)을 만나 해독을 해주는 차로 쓰였으며,
신성의 상징인 떠앙족(德昻族)의 차는 샹바라(오늘날의 중덴)의 장족을 만나 노동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차를 마시는 이의 마음바탕인 열림을 담고 있는 길,
차마고도. 이것이 참으로 차문화의 뿌리가 아닐 것인가.
또 참으로 참선으로 드는 이들의 마음길이 아닐 것인가.
세속과 탈속의 구분도 이미 잊어버리고,
어제로 말미암아 오늘이 얽매이지 않으며, 바깥의 갈라섬으로 하나 됨을 다치게 하지 않고,
어울림을 통해 넓어지고 맑아지며 밝아지는 그 마을이 참으로 참선하는 이들의 집이 아닐 것인가.
차를 즐기는 이와 참선의 길을 걷는 이가 서로 다른 이라 할지라도,
서로 즐거워 얼싸안고 마침내 둘의 이름이 없는 곳에서 한 숨의 쉼을 얻는다면,
차와 참선이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거기에 무슨 세속과 탈속의 줄긋기가 있을 것인가
♩..산사명상음악 / 그대가 나를 떠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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