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적 기독교 정신의 표상
------------- 박두진의 대표시 <해>에 대하여
마광수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
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
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
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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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의 대표작 「해」는 해방 직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의 첫 시집 표제로도 쓰일 만
큼, 그는 이 시에서 자신의 시세계를 총체적으로 약분(約分), 함축시키고 있다. 동양인으로
서 ‘해’를 노래한 시는 거의 없었는데, 박두진 시인은 그런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과감히
서구적 기독교 정신의 표상으로서의 해를 시의 소재로 부각시켰다.
잘 알다시피 중국의 한시나 한국의 한시, 시조 등에 해를 노래한 시는 없다. 거의 모두가
‘달’을 노래하고 있다. 시선(詩仙)이라고 일컬어지는 이태백도 달에 관련된 시는 무수히
창작했으나 해를 노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대표적인 서양 민요로 기억하는 이태리의 ‘오 솔레미오’ 등은 해를 노
래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역시 음양(陰陽)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서양은 양
(陽)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동양은 음(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날짜 계산법을 봐도 서
양에서는 양력을, 동양에서는 음력을 채택하고 있다. ‘음’은 느리고, 연약하고, 은은하
고, 비애적이다. 반면에 ‘양’은 빠르고, 힘차고, 직설적이고, 희열에 넘쳐있다. 그래서 동
양인들은 자기 자신들도 모르게 햇빛보다 훨씬 더 흐린 달빛을 사랑했던 것 같다.
박두진 시인은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시종(始終)하였다. 그래서 『사도행전』이나 『오도(午
禱)』 같은 시집까지 출간하였다. 그의 신앙은 일면으로는 그의 정의감이나 기개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른 일면으로는 그의 후기 작품들을 온통 ‘기독교적 종교시’ 일색으
로 만들어 객관성을 상실하게도 하였다.
그러나 「해」는 비교적 초기작에 속하는 만큼, 직설적으로 기독교의 냄새가 배어있지 않아
서 보편적인 감동을 준다. 게다가 이 시가 씌어진 시기는 한국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던 때
였다. 그토록 원했던 ‘민족의 해방’을 쟁취했는데도, 민족은 다시 좌·우익으로 갈려 동족
상잔의 비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럴 때 박시인의 심정은 무신론자들의 집단인 공산주의자
들을 ‘해’가 물리쳐 주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해를 상징적 비유에 많이 동원한다. 해가 주는 ‘밝음’은 곧 악의 세력
인 ‘어둠’을 물리치는 수단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 음양철학에서는 밝음과
어둠, 해와 달을 동등한 가치로 인정한다. 여기서 우리는 박두진 시인의 ‘서구적 기독교 정
신’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그가 해방 이후 좌익 세력에 휩쓸리지 않고서, 이른 나이에 우익 문인 단체의 간부까지 맡았
던 데는 기독교 정신이 큰 몫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간접적으로 기독교가 지배하
는 세상, 하나님의 ‘빛’과 ‘말씀’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희구(希求)를 드러내고 있
다.
박두진 시의 큰 특징은 언어의 조탁이나 기교에 크게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비
록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인이 됐을망정, 그는 기교적 말장난으로서의 시를 극히 미워하였
다. 박 시인이 연세대 교수로 정년퇴임할 때 한 ‘고별 강의’에서, 말의 기교에 힘쓰는 서
정주 시인을 질타했던 것을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박 시인의 시는 굳고, 힘차고, 선언적이다. 마치 기독교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연
상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특성이 ‘진부한 교훈주의’로 추락할 위험성이 있어,
안타깝게도 그의 후기시들은 널리 읽히거나 애송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사적(志士的) 기개에 있어 박두진 시인을 따라갈 시인은 해방 이후 단 한 명도 없
었다. 그는 권력에 초연하였고 비굴한 아첨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시와 행동’
의 일치를 보여주었다.
「해」에서 또 한가지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미지는 ‘청산(靑山)’의 이미지다. 온갖 종류
의 짐승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청산―그 청산이야말로 기독교에서 말
하는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어둠을 빛으로 몰아내고, 평화롭게 대자연 속에 동화(同化)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긴 생명력
을 가진 시적(詩的) 소망의 표상 역할을 해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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