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출발한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새벽 5시, 순례단 일행이 머물고 있는 캘커타 세바켄드라 건물의 이방 저방 방마다에서 조그마한 소리로 기도 소리가 울려 나오기 시작합니다. 인도성지순례자들의 아름다운 기도 하모니입니다. 어제 밤 새벽2시에 잠자리에 들어 무척 피곤함에도 인도성지순례자들은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어제 방콕에서, 싱가폴에서 자유시간 동안 공항에서 여기저기 바닥에 조그만 깔개를 깔고 기도하던 모습만큼이나 감동입니다.

 

숙소에는 나무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순례참가자들은 스님의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각오를 하고 와서인지 숙소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았고 의외로 편안한 취침을 하였다고 고마워했습니다.  

 

새벽부터 쁘리앙카를 비롯한 JTS 봉사자들 덕분에 계란후라이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바나나 한조각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아침 8시부터 일부 순례단부터 캘커타 칼리사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또 어제 법륜 스님과 함께 이동하지 못해 방콕 공항에서 스님의 OT를 듣지 못한 분들을 위해 숙소 2층 홀에서는 인도성지순례 OT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방콕 공항에서 소음이 많은 곳에서 목청껏 2시간 동안이나 열강을 하셔서 무리가 되셨음에도 오늘도 1시간 반 동안 ‘성지순례자의 마음과 자세’에 대해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 성지순례에 임하는 마음자세에 대해 OT를 해주시고 계신 스님 

 

숙소에서 깔리사원으로 향하면서는 인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시 빈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캘커타 시를 창밖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대하게 되는 인도인들의 생활모습과 도시광경을 보면서, 어제 스님께서 던져주신 화두 ‘부처님이 출가하게 된 문제의식’ 부처님의 사문유관을 느껴보았습니다.순례객들은 또한 인도인들의 생활모습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모두 함께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를 생각해보고 캘커타 방문 목적의 의미를 새겼습니다. 

 

오전9시, 깔리사원에 속해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은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예수님의 고통을 잊지않도록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인간답게 존중받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련한 보호시설입니다. 1954년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한 여성을 만난 테레사 수녀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침대를 제공한 것이 시초가 되었는데, 지금은 수용인원이 많이 없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오늘은 휴일이라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고 순례객들의 정성을 모아 보시금만 전하고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이어가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돌아나왔습니다.

 

이어서 버스탑승 후 순례객들은 국립인도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순례객들보다 30분 일찍 9시30분에 인디안박물관에 도착하셨습니다. 10시부터 입장권 판매가 시작되는데 시간 여유가 있어서 박물관 옆 골목으로 가셔서 쁘리앙카가 사주는 짜이 한잔을 드시면서 쁘리앙카와 인도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짜이 한잔이 10루피를 했는데, 스님께서는 “20년 전에 처음 왔을 때는 1루피였다”고 하시면서 “한 10년 넘도록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는데, 최근에 갑자기 껑충 껑충 오른다” 고 이야기 하시니 급변하는 인도사회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인도전통차 짜이를 드시며 

 

200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박물관에서는 스님께서 직접 불상에 대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모두들 스님을 다시 만난 반가움에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10시부터 순례단을 3팀으로 나뉘어서 30분씩 3차례에 걸쳐 박물관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불상에 대해 하나하나 상세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시는 목소리엔 어제보단 훨씬 힘이 느껴졌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석주들은 산치 대탑 같은 큰 수투파를 둘러싼 울타리로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양을 넣어 장식한 조각들이 많지요. 이 조각들은 모두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이거나 부처님의 일생에 관계되는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는 547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조각만 보고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조각한 것이라고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조각은 금방 알 수 있어요. 여기 있는 조각 같으면 여인이 누워있고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데 마야 부인이 부처님을 잉태하는 태몽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이 조각은 수다타 장자가 기원정사를 창건하던 모습입니다. 금괴를 바닦에 깔고 있잖아요. 

 

그리고 초기에는 불상을 그리지 않았어요. 이 조각은 BC 2세기의 작품인데, 불상이 조각되기 시작한 것은 AD 1세기 경이였어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까지 원정을 오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그리스의 조각이 인도로 전해져 AD 1세기 경에 부처님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조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부처님을 사람 모양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발바닥 모양이나 보리수로 부처님을 상징했어요. 자, 여기를 보세요. 

 


▲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리수 문양

 

이렇게 보리수가 가운데 있고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으면 이것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여기 원숭이가 나무 위를 기어다니는 조각도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전생에 원숭이 왕으로 태어났을 때 피난을 가야 하는데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너무 멀어서 원숭이 왕이 자기 몸으로 나무를 연결해줘서 자기를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이야기를 조각한 것입니다. 

 


 

이 불상을 보면 머리가 툭 튀어 올라와 있죠. 한국에서는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정수리가 툭 튀어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다 이 조각을 보고 만든 얘기예요. 왜 부처님은 보통 사람들과 머리 모양이 다른지 그 원형이 되는 불상이 이 불상입니다.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는 머리를 묶어서 장식을 했거든요. 머리에 장식이 있으면 출가하기 전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예요. 그러다가 출가하실 때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머리를 잘라버렸어요. 그래서 머리를 묶은 매듭과 머리 위에 잘려진 부위를 조각한 겁니다. 그러다가 매듭을 지은 부위가 조금씩 잘 안보이게 조각이 되다가 나중에는 곱슬머리처럼 동글동글하게 문양을 넣어서 조각을 합니다. 처음에 불상은 이런 모습이였어요. 

 


 

그리고 부처님의 모습이 굉장히 당당하죠. 우리나라 불상처럼 쭈그러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아주 활동적인 모습입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불상들이 굉장히 활동적인 모습입니다. 또 밑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모습도 굉장히 호응하는 모습이죠. 초기 불교인들의 이런 당당함과 적극성이 이제는 복원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복을 구하는 힌두교와 결합하고 한국에서는 탄압을 받으면서 쭈그리고 있는 모습이 되어간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불상 하나 하나마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초기의 불상은 당당함과 적극성이 있었다고 하니 스님께서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다니시며 종횡무진 하시는 이유가 어렴풋이 헤아려지기도 했습니다. 한시간 정도의 설명 이후 첫 번째 팀은 자유 관람을 하였고,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팀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자 스님께서는 다시 열정적인 설명을 다시 되풀이 하셨습니다. 한팀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목이 아프셔서 목에 약을 뿌리고, 다시 또 다른 한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처음 설명하듯이 매번 정성껏 하시는 모습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와 조별로 자유시간을 가지며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도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재미이고 신기한 체험들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박물관 근처 식당에 머무시며 스탭들과 실무를 점검하고 체크하셨습니다. 그리고 쁘리앙카와 함께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신 후 하우라역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셨습니다. 

 

순례객들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첫 교화를 하신 사르나트로 가기 위해 박물관 앞에서 버스에 탑승하여 하우라 역으로 향했습니다. 박물관 앞에 모인 많은 인원의 순례객들을 태우려다 보니, 거리에는 크락숀 소리가 유난히 더 커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우라역은 델리-콜카타 선의 출발역인데, 규모와 사람, 복잡함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버스 중 한 대에 짐을 실은 뒷문이 열리지 않아 출발시간을 놓칠까봐 걱정되는 상황이 생겼지만, 워낙 인도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곳이라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아님 여행이 아닌 순례자로서의 마음가짐 덕분인지 어느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잘 기다려주는 가운데 해결이 되었습니다. 

 

하우라역 안은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순례객들은 이어폰으로 소통하며. 조 깃발을 따라 놓치지않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차량별로 짐을 모은 후, 짐을 빙 둘러 앉아 오늘 여정에 대한 나누기를 하는 광경 속에서 정토회 순례단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여함과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로서의 의젓함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로 향하는 공용짐이 많아서 남자 순례객들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미리 기차가 도착하는 플랫폼 위치로 공용짐을 옮겨 놓았습니다.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리며 합심해서 하니 한결 수월하게 공용 짐을 모두 옮길 수 있었습니다. 박스 속에는 대부분 수자타아카데미 아이들이 사용할 학용품과 마을주민 지원 사업에 쓰일 생필품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순례객들이 수고스럽지만 직접 운반해 줌으로 인해 운송 경비를 절약하게 되고, 그 절약된 경비로 천민마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25년 전 처음 성지순례를 시작할 때부터 스님께서는 매년 이렇게 많은 짐들을 순례객들과 함께 가져오고 계십니다. 

 


▲ 바나라시로 가는 도중 가야역에 내릴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지원 물품들

 

짐에 대한 걱정을 덜어서인지 본인의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오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표정들이 한층 밝아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복잡한 가운데 기차를 기다리시는 동안 역사 안에서 또 철로 옆에서 쉼없이 원고를 읽고 교정하셨는데, 그 모습을 본 순레단들은 늘 시간을 헛되이 보내시지 않는 그 모습에 한층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 기차를 기다리며 원고 교정을 보고 계신 스님

 

오후 7시30분 기차는 신기하게도 정각에 나타났습니다. 워낙 인도는 기차 출발 예정시간이 자유롭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순례단들은 환성을 지르며 정각에 나타난 기차를 보고 고마워 했습니다. 

 


 

기차를 탄 순례객들은 조원들끼리 저녁을 챙겨먹으며 마음나누기를 했는데, 도란도란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웃음소리가 기차칸 곳곳으로 번져나갑니다. 

 


▲ 기차를 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음나누기를 하는 순례객들

 

내일은 선주 법사님과 함께 델리를 경유하여 바라나시로 오는 팀, 덕생 법사님과 함께 방콕에서 바라니시로 바로 들어오는 팀까지 포함하여 드디어 500명의 순레단이 모두 바라나시에 모이는 날입니다. 초전 법륜성지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하고, 이제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내일은 바라나시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