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고독하다는 건 / 조병화

맑은물56 2014. 12. 18. 20:50

최희영 님께

2014년 12월 16일 (제3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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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시간 - 조병화

고독하다는 건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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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CT THAT I AM LONELY


                                 
The fact that I am lonely
Means that I still have desires left
The fact that I have desires left
Means that I still have living left
The fact that I have living left
Means that I still have yearning left
The fact that I have yearning left
Means that in time to come
I shall still possess you

No matter how I think about it
This world
Is more confined than the yard of boyhood's conception
And man's place
Is an empty place
An unprotected
Whirlwind plain

Ah, the fact that I am lonely
Means that I still have desires left
The fact that I have desires left
Means that I still have living left
The fact that I have living left
Means that I still have yearning left
The fact that I have yearning left
Means that in time to come
I shall still poss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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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에서는 2014년 1월 14일부터 11월 11일 까지 『꺼지지 않는 등불』(1980, 갑인출판사)에 실린 44명의 외국 시인들이 한국을 노래한 시들을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리즈로 『조병화 영역시집』(1982, 오상출판사, 케빈 오록 譯)에 실린 조병화 시인의 시들을 소개하여 드립니다. 조병화 시인은 세계 시인대회의 활동을 통해 시인들의 국제적인 교류에 힘써왔으며, 조병화 시인의 시들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불어, 스웨덴어 등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는 시들은 외국인 최초로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섰던 케빈 오록 신부(Kevin O'Rourke)의 영역입니다. 지구촌이라는 단어도 무색하리만큼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진 지금, 서로 쓰는 언어는 달라도 시를 읽고 느끼는 감정은 같지 않을까요. 우리의 말로 쓰여진 조병화 시인의 시들이 어떻게 영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또한 그것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새롭게 다가오는지, 모쪼록 그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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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譯者)의 말』  


 조병화시인은 시민의 시인이다. 간결한,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리드믹한 시로서 “보이지 않는 먼 내일”을 향한 인간의 외로운 여정(旅程)을 노래하며, 서울의 상점이나, 주점이나, 집들에 들른다. 근원적인 인간의 동경(憧憬)을 자아내며.

 원래 외로운 시인인 그의 시는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 시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건 참으로 슬픈 거, 라는 걸 항상 생각한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변화무상(化無常)을 살아야 한다. 이 변화무상을 살아오면서 나는 순수고독(純粹孤獨)과 순수허무(純粹虛無)를 깨달았다. 이 속에 내가 있고, 나의 생애가 있고, 나의 작품이 있고, 나의 위안이 있고, 나를 지탱해주는 나의 철학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러한 철학으로 일체를 긍정하고, 일체를 부정하는 속에 내 영혼의 자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자유를 찾아서 고독한 혼자를 그려 온 거다. 끊임없이.”

 더 보람있는 내일에의 가교를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하여 그는 삶의 신비에 부드러운 존엄의 옷을 입히고 있다. 인간의 외로움, 인간의 특이한 개성, 시간과 의미의 추구와의 경쟁, 미지의 내일을 향하여 인간을 추진시키는 신비감, 이러한 것들이 그의 시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테마들이다.
 이 시집에 담긴 시편을 번역한다는 것은 큰 도전적 작업이었다. 조병화 시인은 평범한 시어를 구사하고 있는 점에서 이해하기가 쉬운 시인이지만, 깊은 사색과 미묘한 감정을 동반하는 철학적인 명제를 즐겨 다루고 있는 점에선 어려운 시인이다. 그리고 가장 쉬운 말과 가장 명확한 이미지를 써서 인간의 경험과 인간의 동경의 핵심에 육박하고 있는 점에서 매우 읽기가 즐거운 시인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의 궁극적인 사명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케빈 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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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OR'S PREFACE


 Cho Byung-Hwa is a poet of the ordinary man. In simple, yet elegant, rhythmic verse, he writes of man's lonely journey to a "far-off unseen tomorrow," bringing the most fundamental aspirations of man into the shops, streets, taverns and home of Seoul.

 Essentially a lonely man, Cho Byung-Hwa's poetry is the poetry of human loneliness. He has written, “The most beautiful things are saddest. Because things disappear, because they change. But the mutability of things is something we must live. In living this mutability, I have come to know primeval loneliness and primeval emptiness. I am within them, my life is within them, my poetry is within them, my consolation is within them. And I have learned that the philosophy which supports me is within them. This philosophy has taught me that the freedom of my spirit lies in the affirmation and denial of all things. With this freedom I have depicted a lonely self. Ceaselessly." In his search for the stairs to a full tomorrow, the poet fills the mystery of life with tender dignity. Human loneliness, the unique individuality of man, the race between time and the search for meaning, the sense of mystery which keeps driving man towards that unknown tomorrow-these are the themes which keep recurring in his poetry.

 Translating the poems in this collection has been a great challenge. Cho Byung-Hwa is an easy poet in the sense that he uses very simple language. He is a difficult poet in the sense that he is writing of philosophical themes with great depth of thought and subtlety of feeling. He is a delightful poet in that using the most simple language and the most concrete images, he strikes right into the core of human experience and human aspirations. This surely must be a poet's ultimate task.


                                                                                                           Kevin O'Rourke
                                                                        Dept. of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Kyung-Hee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