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적 자연詩 개척 스웨덴 ‘국민시인’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의 별명은 ‘말똥가리 시인’.
맹금류인 말똥가리처럼 세상을 높은 지점에서 바라보되, 지상의 자연에서 세세한 것들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스톡홀름=로이터 연합뉴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연보
●1931년 4월 15일=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생. 아버지는 저널리스트, 어머니는 교사
●1931∼1940년대=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 밑에서 성장
●1954년=‘열일곱 편의 시’로 데뷔. 미국의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 등과 교류. 후일 스웨덴어로 된 시가 영어권으로 번역되는 계기가 됨
●1956년=스톡홀름대에서 시, 심리학, 종교사학, 역사학 수학
●1958년=시집 ‘길 위의 비밀’ 출간
●1960∼1966년=린쇼핑, 베스테로스 등 스톡홀름 인근 지방에서 심리상담사 활동. 청소년범죄자 대상 심리상담사 역할을 함
●1990년=뇌졸중으로 쓰러짐. 반신불수와 말을 할 수 없는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시작과 시집 출판을 지속함
●1993년=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
●1996년=시집 ‘슬픈 곤돌라’
●2004년=시집 ‘위대한 수수께끼’. 2년 뒤 영어로 번역 출간
●2011년=노벨문학상 수상
■수상
독일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수상
비가(悲歌)
트란스트뢰메르
그가 펜을 치웠다
펜이 탁자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펜이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가 펜을 치웠다
쓸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니!
멋진 여행가방이 심장처럼 고동치지만,
그의 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로 뻣뻣해진다
밖은 초여름.
초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사람인가 새인가?
꽃 핀 벚나무가 집에 돌아온 짐차를 껴안는다.
몇 주가 지나간다
밤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방들이 창유리에 자리 잡는다
세상이 보내온 조그만 창백한 전보들.
하이쿠
트란스트뢰메르
송전선이 뻗어 있다
서리의 왕국,모든 음악의 북쪽에
해가 낮게 걸려 있다
그림자가 거인이다
머잖아 모두 그림자
자줏빛 난초꽃들,
유조선이 미끄러져 지난다
달이 꽉 찼다
잎새들이 속삭인다
멧돼지 하나 오르간을 연주한다
종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기억이 나를 본다
트란스트뢰메르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는 ‘스웨덴의 국민 시인’으로 불린다.
세상을 높은 곳에서 신비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연 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를 스웨덴 국민은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 “그는 역사와 기억, 자연, 죽음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해 집필해 왔다.
그의 시는 경제성과 구체성, 그리고 신랄한 비유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01년 노벨 문학상 제정 이후 스웨덴 출신으로 일곱 번째 수상자가 됐다.
1974년 스웨덴의 하리 마르틴손(시인), 에위빈드 올로프 베르네르 욘손(소설가)의 공동 수상 이후 37년 만이다.
트란스트뢰메르는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97년 영국에서 출간한 시선집이 호평을 받으며 유럽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현존 시인 가운데 지명도와 문학성에서 가장 앞선 시인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유럽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과묵한 시인’으로 불린다. 50년 넘게 문단활동을 했지만 200편 남짓의 시를 발표하는 데 그쳤다. 한 해 네댓 편 정도의 시를 발표한 셈이다. 이런 집필 스타일답게 그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시류에 흔들림 없이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해왔다.
수십 년의 시작활동 속에서 그의 시는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었지만 그 바탕은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이고 심미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세계문학사적으로는 모더니즘 시의 전통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준 그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시의 영역을 확대해 현실정치나 사회와 벽을 쌓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꿋꿋이 지켜왔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을 탐구하고 있기에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광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재웅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는 “트란스트뢰메르는 일본 하이쿠처럼 짧은 글귀로 시를 쓰는 게 특징이다. 그의 시는 철학적 성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자연을 노래한다 해도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과 관련된 인간의 존재가 어우러지고, 삶에 담긴 무게를 심도 있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교도소와 장애인시설, 마약중독자 치료센터 등에서 상담사로 일하기도 했다. 1990년 뇌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반신마비가 와 현재 대화가 어려운 상태다. 즐겨 치던 피아노도 이젠 왼손으로밖에 연주할 수 없다고 그의 아내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2004년 시선집 ‘기억이 나를 본다’(들녘)가 출간됐다. 이 시집은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고은 시인이 책임 편집했다.
노벨 문학상 상금은 1000만 크로네(약 17억 원). 시상식은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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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사진)가 올해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거론된 우리나라 고은 시인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 “다소 흐리면서도 압축된 심상을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나라 스웨덴에서 수상자가 나온 것은 37년 만이다.
한림원 종신위원이자 스웨덴 출신 작가인 페테르 엥글룬트는 “트란스트뢰메르는 죽음, 역사, 기억, 자연 같은 중대한 질문에 작품을 써왔다”며 “그의 시는 경제적이지만 정확하고, 신랄한 은유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1931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트란스트뢰메르는 23살 때 첫 시집 ‘열일곱 편의 시’를 출간하면서 등단했다. 스톡홀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심리상담사로 장애인이나 범죄자,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시작을 병행했다.
69세가 되던 1990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반신불수에 말도 못하게 됐지만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2004년 시집 ‘위대한 수수께끼(The Great Enigma)’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그는 생존해 있는 시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으로,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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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사진)는 스웨덴에서 ‘국민시인’으로 사랑받는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자 북유럽의 대표 시인이다.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언론인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린쇼핑, 베스테로스 등에서 심리상담사로 활동한 그는 13살 때부터 글을 썼고, 스물셋이던 1954년 스톡홀름 앞바다의 수많은 섬을 보고 받은 인상을 우주적인 관점에서 묘사한 시집 ‘17편의 시’(1954)로 데뷔했다.
1958년 여행 경험을 담은 ‘길 위의 비밀’을 출간한 것을 비롯해 ‘미완의 천국’(1962), 유년시절의 기억을 소재로 한 ‘발트해’(1974) 등 7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10여권의 시집을 출판했다.
50여년에 걸쳐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 안팎으로 1년에 평균 네댓 편만을 쓸 정도의 ‘과묵의 시인’이었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시작을 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고요한 깊이의 시’ 혹은 ‘침묵과 심연의 시’라고 평가받는다.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이고 심미적인 전통과 함께 세계 문학사적으론 모더니즘 전통과의 연관 속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그가 모더니스트 시인 에릭 린데그렌과 1940년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 탐구가 그의 시에 주로 나오지만, 초기 작품에서는 잠과 깨어남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도돼 있다.
초기 시에서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 이미지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강 및 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물과 불,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이 밀집돼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 구사의 마술사라는 평을 듣는 이유다.
중기 작품은 세상 혹은 자연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에서 배태된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주요한 동력이 된다. 이 같은 자유분방함은 기독교 신비주의의 차원과 긴밀히 연관된다는 분석이다. 그는 그래서 한때 “종교적 경사가 심하고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세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눈앞의 정치현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란스트뢰메르는 비판에 대응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길을 꿋꿋이 걸으며 ‘침묵과 심연의 시’를 이어갔다.
자연과 삶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을 담고 있는 동시에 문체를 지극히 단순화시키면서도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드러낸다. 마치 기억의 숨소리마저 들려주는 이런 시처럼.
사실 그의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정치·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정치적으로 급진도 반동도 아닌 제3의 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전반적인 중용의 인생관, 혹은 ‘침묵과 깊이의 인생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그래서 ‘100퍼센트’라는 표현을 혐오한다. 진실은 100퍼센트와 0퍼센트 사이의 어느 지점에 숨어 있어 그 길을 올곧게 따라가는 게 ‘똑바로 선 인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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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를 본다’ 시집 표지 |
스웨덴 사람들은 그에게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말똥가리처럼 높은 지점에서 세상을 일종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되, 지상의 자질구레한 세목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따라서 ‘꼼꼼한 거시주의’ 혹은 ‘거시적 미시주의’가 그의 특징적인 시의 방법이 된다.
그는 지금까지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도 포함돼 있다. 그의 시는 미국의 로버트 블라이, 영국의 로빈 풀턴 등 많은 영어권 시인들에 의해 번역되는 등 지금까지 50여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인 고은씨가 책임편집한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중 하나로, 2004년 트란스트뢰메르가 선정한 96편의 시를 담은 ‘기억이 나를 본다’가 출간된 바 있다.
트란스트뢰메르는 199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지금까지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한 시인,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김상열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어과 교수는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핀란드 및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집필 되어 심오할 뿐 아니라, 본인이 피아니스트인 만큼 음악성도 뛰어나다”며 “세계적으로, 특히 영미권과 게르만어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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