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나를 찾아 가는 길

진리는 명상(名相)을 떠나있다.

맑은물56 2010. 11. 4. 10:31

 

진리는 명상(名相)을 떠나있다.

 

진리는 명상(名相)을 떠나있다.

청화큰스님

 

 

부처님은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또한 어떠한 이름이 본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때 그때 중생의 그릇 따라서 부처님의 그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생명 자리에서 공덕(功德) 따라서 잠시간 이름이 붙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총체적인 총 대명사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고, 또 부처님을 자비로운 쪽으로 보고 말할 때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또 지혜로운 쪽으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 우리 중생의 영혼(靈魂)을 극락세계(極樂世界)나 천상세계로 인도할 때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러는 것이지 따로 따로 뿔뿔이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그때는 원시종교(原始宗敎)란 말입니다.

'명상(名相)을 떠난다' 하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해 두십시오. 이름 명(名)자, 서로 상(相)자 말입니다. 진리는 이름과 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름과 상을 못 떠나면 이것은 범부(凡夫)입니다. 소승도 이름과 상을 떠나는 것인데 하물며 불법의 그런 정수인 대승을 믿는 분들은 꼭 허망한 이름과 상을 떠나야 됩니다.

금강경(金剛經)의 핵심도 나라는 상(我相), 너라는 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상이 있으면 범부고 상이 없으면 성자입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모두가 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만 했으면 되겠단 말입니다. 세상은 바쁘고 또 이름이 달라지면 사람들끼리도 서로서로 마음이 갈라질 수가 있겠지요.

기독교는 다행히 '오, 주여!' 한 분을 하므로 좋은데 불교는 너무나도 이름이 많으므로 가르치는 분마다 자기 개성 따라서 가르치므로 혼란이 온단 말입니다.

현명하신 여러분들은 잘 판단하셔서 될수록 그런 쪽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을 하면서 기도를 모신다고 기도가 적게 되겠습니까? 공이 적겠습니까?

참선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참선을 해야 그래야 바른 불자가 됩니다. 참선은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 참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소재가 우리 마음이 부처님! 부처님이라 하는 생명의 실상, 생명의 그 본질에 머물러서 다른 허튼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참선입니다.

제 아무리 모양 좋게 한 철 선방에 가서 공부해서 공부 잘했다. 이렇게 돼도 분별시비하고 자기라는 것에 걸리면 이것은 참선이 되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또 한가지 의심을 품으실 것입니다. 아! 그렇게 해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고, 아내는 아내가 되어야 더 정이 있고 남편은 남편이 되어야 할 것인데 다 부처님 같이 보아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인가? 또는 사업도 해야 되고, 별일 다 해야 될 것인데 그래버리면 무엇이 될 것인가?

이렇게 의심을 품으실 것입니다만 사실은 그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버려야 훨씬 좋습니다.

자기 아내한테도 부처님 같이 대한다고 생각할 때는 절도 있게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고 말입니다. 절도 있게 대할 수가 있습니다. 아들한테나 누구한테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아들을 자기 소유물같이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아들을 부처님같이 대한다고 생각할 때는 아들을 사랑하지 말라해도 누가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아들같이 사랑하면서 아들이면서 부처님이란 말씀입니다. 아내는 아내이면서 부처님이란 말씀입니다. 이렇게 현상은 비록 아내고 남편이지만 그러나 본 바탕은 다 부처님이 아닌가.

사업을 하나 또는 같이 당(政黨)을 하나 말입니다. 정치를 하나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입니다. 상대편이 대립적으로 우리 인연 따라서 내가 되고 네가 되었다 하더라도 겉은 그렇지만 참다운 알맹이는 똑같은 부처님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는 인간관계가 제일 좋은 것입니다. 자기한테나 남한테나 제일 좋은 것입니다.

부처님한테 가는 길은 절대로 고통스러운 길이 아닙니다. 사실은 성불(成佛)하는 길이 항시 저는 제일 쉽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생각이 무엇인가? 가장 위대한 분이 누구인가? 또는 우리 생명의 근본 고향이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우주의 법도에 우주의 질서에 바로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래로 내가 없는 것인데 나는 나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해도 무방하다. 이런 때는 벌써 우주의 도리에 빗나갑니다.

따라서 자기 마음도 불안스러운 것입니다. 남한테 베풀 때에 우리 마음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비양심적인 짓을 한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 마음은 그만큼 불안하고 어두워집니다. 그 얼굴도 어두워집니다. 남한테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 때에 그 얼굴은 벌써 그 표정도 빛나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에 따르는 우주의 도리에 따르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 건강을 위해서나 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과 화해를 위해서나 우리 민족을 위해서나 가정을 위해서나 어느 분야로 보아도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현대는 인간성(人間性)의 부재(不在)라, 이 세상이 혼란스럽고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하는 것은 인간성의 상실이다. 또는 가치관의 부재다. 이런 말씀을 누구나가 다 쓰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떠한 것이 참다운 인간성일까? 어떠한 것이 참다운 가치관일까? 이렇게 반문해 들어가면 확답을 잘못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로 부처님 인생관, 부처님 가르침같은 참다운 인간관, 부처님 가르침같은 참다운 진리에 따르는 가치관, 이것만 제대로 선다고 생각할 때는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어떠한 면으로 보나 최선으로 바르게 발달이 됩니다.

하나의 문학 작품을 낸다 하더라도 '아! 모두가 다 부처님 아님이 없다' '바람소리나 물소리나 다 부처님 법문 아님이 없다'.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깨달은 때도 역시 '산의 모습은 부처님 법신, 부처님의 몸 아님이 없고,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소리 아님이 없다.' 이렇게 느꼈단 말입니다.

소동파같은 중국 북송(北宋)시대의 시인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이 맑아지면, 여러분들 한번 해보십시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염불을 수만번 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마음이 고요해 옵니다. 그래서 자기 집 근처에 시냇물이 흘러가면 그 시냇물 소리가 틀림없이 염불소리로 들려옵니다. 비록 시냇물이 없다 하더라도 그냥 바람소리가 들려와도 그 바람 소리가 그 신묘한 음악소리로 들려옵니다.

그런 바람소리나 물소리나 좋은 소리뿐만 아니라 나쁜 소음도 공부가 되어 놓으면 그 나쁜 소음공해까지도 정화가 되어서 아주 신묘한 멜로디로 우리한테 들려옵니다.

행복(幸福)으로 가는 길은 다른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무수한 성자(聖者)들이 순교(殉敎)도 하고 또는 무수한 성자가 신명을 바치고서 우리 인간한테 탄탄대로(坦坦大路)를 열어주신 성불의 길, 성자가 되는 길, 그 길 이외는 절대로 참다운 행복, 참다운 자유, 참다운 평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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