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은 그 쇠를 먹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불가사의한 것이 또 있을까.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두루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꽃을 자리가 없는 것이 이 마음이니까.
그래서 가수들은 오늘도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우리 마음을 대변한다.
자기 마음을 자신이 모르다니,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소리 같다.
하지만, 이것은 평범하면서도 틀림이 없는 진리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어떤 사람과는 눈길만 마주쳐도 그날의 보람을 느끼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림자만 보아도 밥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한정된 직장에서 대인관계처럼 중요한 몲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정든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 원인중에 얼마쯤은 바로 이 대인관계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째서 똑같은 사람인데 어느 놈은 곱고 어느 놈은 미울까.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생에 얽힌 사연들이 조명되어야 하겠지만, 상식의 세계에서 보더라도
무언가 그럴만한 꼬투리가 있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는 법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직장이 "외나무 다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선 같은 일터에서 만나게 된 인연에 감사를 느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삼십 몇 억이나 되는 엄청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도 동양, 또 그 속에서도 5천만이 넘는 한반도, 다시 분단된 남쪽, 서울만 하더라도 6백만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같은 직장에 몸담아 있다는 것은 정말 아슬아슬한 비율이다.
이런 내력을 생각할 때 우선 만났다는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꼬운 일이 있더라도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돌이킬 수밖에 없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지니까.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버린다면 내 인생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 즉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맺힌 것은 언젠가 풀지 않으면 안 된다.
금생에 풀리지 않으면 그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알 수 없는 일.
그러니 직장은 그 좋은 기회일 뿐아니라 친화력을 기르는 터전일 수 있다.
일(직무)의 위대성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점일 것이다.
일을 통해서 우리는 맺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고와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뜻이다.
그 어떠한 수도나 수양이라 할지라도 이 마음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법구경"에는 이런 비유도 나온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같이 이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왜 우리가 서로 증오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같은 배에 실려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나그네들인데..........(마음, 1973. 7.)
<법정스님 - 무소유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