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상시와 글

<유진의 시읽기> 새점을 치며 / 정호승>

맑은물56 2010. 5. 31. 19:36

☛서울일보 / 2010.5.13(목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새점을 치며

                                     정호승

 

 

눈 내리는 날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천 원짜리 한 장 내밀고

새점을 치면서

어린 새에게 묻는다

나 같은 인간은 맞아 죽어도 싸지만

어떻게 좀 안되겠느냐고

묻는다

새장에 갇힌

어린 새에게 

 

시 읽기

 

  시골장날이나 재래시장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시장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새가 뽑아주는 쪽지 한 장에 운명을 거는 것은

 

분명 아니련만,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새장에 갇힌 어린 새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먹이 때문에 길들여진 어린 새는 어떤 우연의 일치를

 

뽑아줄까?

 

 본능적 생명력을 배제하고 생각해보면 인간처럼 나약한 생명체도 없을 것

 

같다.  뇌에 저장된 정보만큼의 자기세계를 만들고,  이성적욕구와 본능적

 

욕구와의 사이에서 갈등과 긍정, 노력과 체념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감성이나 감정이 없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한다는 의무감도 없을 것

 

이며, 갈등과 죄의식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성적사고의 한계 속에서 본능적 욕구를 다스리며 살아가야하므로 때로

 

불안을 느끼게도 되고 나약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점을 치는 동안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은밀한 자신을 위안 받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