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보 / 2010.5.13(목요일)자
詩가 있는
새점을 치며
정호승
눈 내리는 날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천 원짜리 한 장 내밀고
새점을 치면서
어린 새에게 묻는다
나 같은 인간은 맞아 죽어도 싸지만
어떻게 좀 안되겠느냐고
묻는다
새장에 갇힌
어린 새에게
◆시 읽기◆
시골장날이나 재래시장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시장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새가 뽑아주는 쪽지 한 장에 운명을 거는 것은
분명 아니련만,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새장에 갇힌 어린 새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먹이 때문에 길들여진 어린 새는 어떤 우연의 일치를
뽑아줄까?
본능적 생명력을 배제하고 생각해보면 인간처럼 나약한 생명체도 없을 것
같다. 뇌에 저장된 정보만큼의 자기세계를 만들고, 이성적욕구와 본능적
욕구와의 사이에서 갈등과 긍정, 노력과 체념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감성이나 감정이 없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한다는 의무감도 없을 것
이며, 갈등과 죄의식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성적사고의 한계 속에서 본능적 욕구를 다스리며 살아가야하므로 때로
불안을 느끼게도 되고 나약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점을 치는 동안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은밀한 자신을 위안 받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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