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차와 예절

사찰음식-평택 수도사

맑은물56 2010. 4. 21. 15:00

五·色·六·味… 눈도 입도 호강한 날


지난 17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수도사에서 사찰음식 전문가인 정관 스님(왼쪽)과 우관 스님이 직접 만든 음식과 함께 봄볕을 즐기고 있다. /평택=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평택 修道寺 '사찰음식' 조리 현장 가보니

토마토로 만든 삼색만 콩햄을 이용한 카나페… 형형색색에 맛·영양 풍부


지난 17일 점심 무렵,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의 봉화산 기슭은 인기척으로 분주해졌다. 찌고 굽고 볶는 냄새가 산 아래 수도사(修道寺)를 둘러쌌다. 대웅전 맞은편 장독대에서는 된장과 간장을 품은 20여개의 독이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열릴 사찰음식 페스티벌이 엿새 앞. 조리 시연을 맡은 30명이 최종 예행연습을 위해 이곳 사찰로 모였다.

"자, 오늘 음식은 불교의 5가지 상징 색을 살려서 만들어야 합니다." 수도사 주지이자 부설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의 소장인 적문 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연구소 주방에 모인 이들은 청색·황색·적색·백색·주황색이 뜻하는 불법(佛法)에 대한 설명을 경청했다. 한가운데 자리한 두 스님은 전국비구니회 교무국장인 우관 스님(이천 감은사 주지)과 조계종 사찰음식연구원의 정관 스님(대구 홍연암 주지). 세 스님의 지휘 하에 연구소 정기강좌 수료생과 조계종 사찰음식연구팀 소속팀원들이 30가지 음식 조리에 들어갔다.

30명은 6개 테이블에 놓인 식재료를 집어들었다. 정관 스님 팀은 적색 음식을 맡았다. "적색 음식은 심장에 좋다"는 정관 스님의 설명. '통통한 토마토로 만든 삼색만두' '딸기를 갈아 만든 진달래 찹쌀 부꾸미' 등이 회심의 작품이다.

우관 스님 팀은 폐에 좋은 백색 음식을 준비했다. 우관 스님의 손맛이 담긴 모듬버섯편채는 돼지고기 편육 대신 개발한 것으로, 목이버섯·새송이버섯 등 5가지 버섯에 다시를 부어 젤리처럼 굳혔다. 쫀득하면서도 버섯향이 가득하다.

사찰음식에는 인공조미료 대신 다시다, 버섯, 들깨, 콩가루 등 천연 조미료를 쓴다. 준비 중인 요리를 살펴보던 적문 스님은 "나물로 만든다고 전부 사찰음식이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불교의 육미(六味)인 짠맛,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특히 담백한 맛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관 스님은 콩햄으로 구워 만든 카나페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콩햄 위에 누룽지 부각과 감자 부각을 올린 스님은 옆에서 조리하던 팀원에게 "복분자 소스를 좀 더 집어넣어라"고 조언했다.

우관 스님은 한 연구원이 부친 진달래 화전을 보고 "꽃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찰음식에는 음식을 만든다는 순수하고 기쁜 마음(喜心),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애정을 다하는 마음(老心), 최선을 다하는 넓은 마음(大心)이 기본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 연구원은 재료로 준비된 꽃잎을 다시 살펴보며 새로 부치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산사(山寺)에서는 국맛으로 공부의 깊이를 가늠했다. 국을 대하는 자세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같아야 했다. 시래깃국을 끓일 때는 전심전력으로 시래깃국을, 뭇국을 끓일 때는 전심전력으로 뭇국에 마음을 쏟았다. 국 끓이는 순간에는 오직 국만이 우주의 전부였다.

사찰음식이 까다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자조림처럼 간단하지만 독특한 맛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도 많다. 연꽃의 열매인 연자를 물에 불린 후 표고 다시에 꿀을 넣어 조려낸 연자조림은 속을 편하게 하고 혈액 순환에도 좋다. 콩알보다 조금 큰데 맛은 천생 밤맛이다.

다시 부치고 새로 굽는 진통 끝에, 페스티벌에 선보일 5색 상차림이 2시간 만에 모양을 갖췄다. 음식들은 5가지 색 천이 깔린 기다란 상 위에 놓였다. 23일 오전 11시 속리산 법주사 행사 당일에도 똑같은 시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문의 (031)682-3169

●사찰음식 3원칙

사찰음식은 ‘청정(?]淨), 유연(柔軟), 여법(如法)’ 3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고승들의 글을 모아 엮은 17세기 책 ‘치문경훈(緇門警訓)’에서 가르친 철학이다.

청정함이란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가 들지 않는 채소로 깨끗한 맛을 내는 것을 말한다. 육식과 젓갈은 물론, 파, 마늘, 달래, 부추 등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를 금한다. 오신채는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열물(熱物)’로,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일고, 날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든다고 멀리했다.

유연함이란 짜고 맵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여법함이란 앙념을 하더라도 순서를 지켜 적당하게 넣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양념을 넣을 때는 단것, 짠것, 식초, 장류 순으로 넣는다. 소금을 먼저 넣으면 짠맛이 먼저 침투하기 때문에 같은 분량을 넣더라도 더 짜게 된다는 것. 설탕을 먼저 넣으면 크기가 큰 단맛 입자가 짠맛을 막아 덜 짜게 조리할 수 있다는 원리다.

[평택=신정선 기자 violet@chosun.com]

                 이경애 관장 '산사의 아름다운 밥상' 출간

“사찰음식은 제철, 제 땅에서 채취한 식물로 만드는 건강식으로, 몸은 물론이고 마음의 건강까지 챙겨 주지요. 예부터 스님들이 음식 만드는 공양간을 중요한 수행처로 삼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전국 사찰의 소문난 공양간 12곳의 이야기를 엮어 ‘산사의 아름다운 밥상’(조계종 출판사)을 펴낸 이경애(55·사진) 북촌생활사박물관장은 사찰음식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불교계 신문과 방송에서 오랫동안 글을 써온 그는 이 책에서 절집 공양간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적어나간다. 전통 공양간과 추억의 우리 토종맛, 맛깔스런 글솜씨가 어우러져 누구라도 탐낼 만한 ‘청정 레시피’가 탄생한 것이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철에는 콩나물, 무생채, 취나물로 된 삼색나물 비빔밥과 구수한 청국장을 곁들여 먹으면 더위가 절로 가실 것입니다.”

박 관장은 생명과 건강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자꾸 늘어나면서 수년 전부터 사찰음식을 주목했다. 스님들이 뼈를 깎는 수행을 하는데도 몸을 지탱하는 힘이 뭘까, 잠을 적게 자는데도 버티는 힘이 뭘까 궁금해하던 중에 전국의 이름난 절집 공양간을 돌며 음식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산야초 속에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영양소와 약 성분이 들어 있다. 그래서 야초 종류가 그리도 많은 것이다. 절집에서는 그 순리에 따라 밥상을 차린다. 가을에 거둔 곡식과 열매로 겨울철 몸 보양을 하고, 봄과 여름엔 산야초 잎과 줄기로 원기를 돋운다. 청정한 재료, 슴슴한 간, 약간 양이 모자란 듯한 절집 음식은 그야말로 위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버릴 것이 없으니 자연에도 좋은 이상적 식단이 아닐 수 없다.

“절 음식은 과식해도 부담이 없지요. 요즘에는 아토피 때문에 사찰에 머무는 신도 자녀들도 많아요.”
◇스님들이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아한다는 ‘산사의 즉석 김밥’.◇매실장아찌.

그가 사진작가 하지권씨와 발품을 팔며 다닌 곳은 지리산 대원사, 승주 선암사, 문경 김룡사 등 전국 유서 깊은 사찰의 공양간 12곳. 절집에서 장아찌 같은 절임 음식은 하나같이 ‘밥도둑’이다. 무를 재료로 한 반찬만 50가지가 넘는다. 신세대 스님들이 만들어내는 즉석김밥이 별미인 대원사 공양간에서는 ‘물 한 방울에 천지 은혜가 스며 있고, 밥 한 톨에 만 사람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는 옛 선사들의 가르침이 쩡쩡 울린다.

지상에서 가장 겸허하고 청빈한 밥상이 차려진다는 선암사에서는 300년 넘은 매화나무 매실로 담근 ‘명품 장아찌’를 맛볼 수 있다. 천날만날 같은 메뉴, 같은 맛이지만, 김룡사 공양주가 추천하는 쫄깃쫄깃한 가죽장아찌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산청 금수암은 아예 주지인 대안 스님이 사찰요리전문가다. 서산 개심사 노보살의 손맛은 절 밖까지 자자하고, 한수이북 도도한 기풍이 서린 비구니 선원 오대산 지장암에서는 브로콜리라는 외래종도 토종맛으로 바뀐다. 곡성 관음사, 도봉산 원통사, 동대문 안양암, 운길산 수종사, 양구 흥덕사, 수원 봉녕사 공양간이 차려내는 정갈한 음식, 살가운 후원 풍경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보해 준다.

“사찰 음식을 먹어보면 우리 몸이 좋다는 것을 먼저 압니다. 여기에 한번 맞추면 다른 음식은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되지요.”

책에는 이들 12개 공양간에서 자랑하는 사찰 음식과 조리법이 현장 사진과 함께 실려 있고, 진국 같은 공양보살 이야기, 공양간에 전해지는 설화도 담겨 있어 글 읽기가 여간 즐겁지 않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