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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수도사에서 사찰음식 전문가인 정관 스님(왼쪽)과 우관 스님이 직접 만든 음식과 함께 봄볕을 즐기고 있다. /평택=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
평택 修道寺 '사찰음식' 조리 현장 가보니
토마토로 만든 삼색만 콩햄을 이용한 카나페… 형형색색에 맛·영양 풍부
지난 17일 점심 무렵,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의 봉화산 기슭은 인기척으로 분주해졌다. 찌고 굽고 볶는 냄새가 산 아래 수도사(修道寺)를 둘러쌌다. 대웅전 맞은편 장독대에서는 된장과 간장을 품은 20여개의 독이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열릴 사찰음식 페스티벌이 엿새 앞. 조리 시연을 맡은 30명이 최종 예행연습을 위해 이곳 사찰로 모였다.
"자, 오늘 음식은 불교의 5가지 상징 색을 살려서 만들어야 합니다." 수도사 주지이자 부설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의 소장인 적문 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연구소 주방에 모인 이들은 청색·황색·적색·백색·주황색이 뜻하는 불법(佛法)에 대한 설명을 경청했다. 한가운데 자리한 두 스님은 전국비구니회 교무국장인 우관 스님(이천 감은사 주지)과 조계종 사찰음식연구원의 정관 스님(대구 홍연암 주지). 세 스님의 지휘 하에 연구소 정기강좌 수료생과 조계종 사찰음식연구팀 소속팀원들이 30가지 음식 조리에 들어갔다.
30명은 6개 테이블에 놓인 식재료를 집어들었다. 정관 스님 팀은 적색 음식을 맡았다. "적색 음식은 심장에 좋다"는 정관 스님의 설명. '통통한 토마토로 만든 삼색만두' '딸기를 갈아 만든 진달래 찹쌀 부꾸미' 등이 회심의 작품이다.
우관 스님 팀은 폐에 좋은 백색 음식을 준비했다. 우관 스님의 손맛이 담긴 모듬버섯편채는 돼지고기 편육 대신 개발한 것으로, 목이버섯·새송이버섯 등 5가지 버섯에 다시를 부어 젤리처럼 굳혔다. 쫀득하면서도 버섯향이 가득하다.
사찰음식에는 인공조미료 대신 다시다, 버섯, 들깨, 콩가루 등 천연 조미료를 쓴다. 준비 중인 요리를 살펴보던 적문 스님은 "나물로 만든다고 전부 사찰음식이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불교의 육미(六味)인 짠맛,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특히 담백한 맛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관 스님은 콩햄으로 구워 만든 카나페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콩햄 위에 누룽지 부각과 감자 부각을 올린 스님은 옆에서 조리하던 팀원에게 "복분자 소스를 좀 더 집어넣어라"고 조언했다.
우관 스님은 한 연구원이 부친 진달래 화전을 보고 "꽃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찰음식에는 음식을 만든다는 순수하고 기쁜 마음(喜心),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애정을 다하는 마음(老心), 최선을 다하는 넓은 마음(大心)이 기본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 연구원은 재료로 준비된 꽃잎을 다시 살펴보며 새로 부치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산사(山寺)에서는 국맛으로 공부의 깊이를 가늠했다. 국을 대하는 자세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같아야 했다. 시래깃국을 끓일 때는 전심전력으로 시래깃국을, 뭇국을 끓일 때는 전심전력으로 뭇국에 마음을 쏟았다. 국 끓이는 순간에는 오직 국만이 우주의 전부였다.
사찰음식이 까다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자조림처럼 간단하지만 독특한 맛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도 많다. 연꽃의 열매인 연자를 물에 불린 후 표고 다시에 꿀을 넣어 조려낸 연자조림은 속을 편하게 하고 혈액 순환에도 좋다. 콩알보다 조금 큰데 맛은 천생 밤맛이다.
다시 부치고 새로 굽는 진통 끝에, 페스티벌에 선보일 5색 상차림이 2시간 만에 모양을 갖췄다. 음식들은 5가지 색 천이 깔린 기다란 상 위에 놓였다. 23일 오전 11시 속리산 법주사 행사 당일에도 똑같은 시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문의 (031)682-3169
●사찰음식 3원칙
사찰음식은 ‘청정(?]淨), 유연(柔軟), 여법(如法)’ 3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고승들의 글을 모아 엮은 17세기 책 ‘치문경훈(緇門警訓)’에서 가르친 철학이다.
청정함이란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가 들지 않는 채소로 깨끗한 맛을 내는 것을 말한다. 육식과 젓갈은 물론, 파, 마늘, 달래, 부추 등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를 금한다. 오신채는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열물(熱物)’로,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일고, 날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든다고 멀리했다.
유연함이란 짜고 맵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여법함이란 앙념을 하더라도 순서를 지켜 적당하게 넣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양념을 넣을 때는 단것, 짠것, 식초, 장류 순으로 넣는다. 소금을 먼저 넣으면 짠맛이 먼저 침투하기 때문에 같은 분량을 넣더라도 더 짜게 된다는 것. 설탕을 먼저 넣으면 크기가 큰 단맛 입자가 짠맛을 막아 덜 짜게 조리할 수 있다는 원리다.
[평택=신정선 기자 viole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