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4월은 갈아엎는 달/ 신동엽
4월은 갈아엎는 달/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 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심저,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 - 1966년 4월 동아일보에 발표 ................................................................................................................................................
1930년생 신동엽 시인이 만약 살아 있다면 지금 여든의 나이다. 하지만 마흔을 채 넘기지 못하고 1969년 4월 7일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제와 오늘 그의 고향 부여에서 그를 기리는 문학제가 열렸다. 4.19를 맞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은 역시 신동엽이다. 신동엽 시인하면 바로 생각나는 시가 <껍데기는 가라>이며, 다음으로 동학혁명을 주제로 한 서사시 <금강>이 있다. 우리 문학사에 매우 선명하고도 강렬한 족적을 남긴 이 시인을 어떤 연예인의 이름으로만 알지 제대로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요즘 드문 것 같다.
이 시는 4.19와 동학을 통해 민중의 질긴 생명력과 민주에의 열망을 재확인하면서 이를 억압하는 모든 비본질적 요소들이 사라지기를 갈망하고 있다. 순수정신은 퇴색되고 사이비가 판을 치는 안타까운 현실에 분노하며 저항의 의지를 다시 불태운다. 44년 전 동시대의 현실에 향했던 비판들이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상황 아래서도 여전한 현실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징그럽도록 슬프다. 변화에의 기대로 설레며, 껍질을 찢고 푸르게 돋아나는 속잎을 보면서 미치고 싶은 이 잔인한 4월에 무언가 한바탕 다시 갈아엎고 싶은 충동이 치미는 건 왜일까. 그 땅에 새롭게 보리씨앗을 파종하고 이 강산 푸른 보리로 물결치도록 먼저 우리스스로의 마음밭부터 갈아엎을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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