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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乘正宗分 第三 (대승의 바른종지)

맑은물56 2010. 2. 4. 09:00
大乘正宗分 第三 (대승의 바른종지)
육조금강경 - 대승정종분3  

大乘正宗分 第三(대승의 바른종지)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니라.”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 非無想
“있는바 일체 중생의 종류인 난생. 태생. 습생. 화생. 유색. 무색. 유상. 무상. 비유상. 비무상을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내가 다 무여열반에 들어가게 해서 그들을 다 멸도 하리라.
六祖   卵生이란 성품이 迷한 것이고 胎生이란 濕生이요 濕生이란 邪를 따르는 성품이고 化生이란 보고 취하는 性이니 미한 까닭에 모든 업을 짓고 거듭함으로써 항상 流轉하고 삿됨을 따르매 마음이 안정하지 못함이요, 온갖 갈래를 다 보므로 빠지고 떨어짐이 많으니라. 마음을 일으키고 마음을 닦아서 망령되이 시비를 보고 안으로 無相의 이치에 계합하지 못함을 有色이라 함이니라.
내심으론 곧은 마음만 지켜서 공경. 공양을 행하지 않고 다만 곧은 마음만 부처라고 보아서 복과 혜를 닦지 않음을 無色이라 하도다.
中道를 요달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사유하여 法相에 애착해서 입으로는 佛行을 말하되 마음으로 행하지 않음을 有想이라 함이요, 미한 사람이 좌선하며 한결같이 망념만 없애고 자비희사의 지혜방편을 배우지 않아서 마치 목석과 같이 아무 작용이 없는 것을 無想이라 하느니라. 두 가지 法相(有無)에 집착하지 않는 고로 非有想이라 하고 이치를 구하는 마음이 있는 고로 非無相이라 하느니라.
번뇌는 만가지 차별이 있으나 이는 다 때묻은 마음이요, 몸의 형상이 헤아릴 수 없으나 모두 중생이라 이름하느니라.
여래께서 대자비로 널리 교화하시어 다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서 그들을 다 멸도하게 하는 것은, 여래께서 三界의 九地衆生이 각각 열반묘심이 있음을 가리켜 보이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무여열반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심이니라. 無餘란 習氣, 번뇌가 없음이니라. 열반이란 원만 청정의 뜻이니 일체 습기를 모두 멸해서 영원히 번뇌가 다시 나지 않게 하여 바야흐로 이에 계합하는 것이니라.
  度란 생사대해를 건너는 것이니 佛心이 평등해서 널리 일체중생과 더불어 원만하고 청정한 무여열반에 들어서 다같이 생사대해를 건너서 과거 모든 부처님이 증득한 것과 똑같이 되길 원함이니라. 어떤 사람이 비록 깨닫고 수행을 하나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리어 我相이라 함이다. 法에 對한 我相을 모두 없애야 바야흐로 滅度라 하느니라.
 如是滅度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이와 같이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을 멸도하되 실로는 멸도를 얻은 중생이 없느니라.”

六祖   如是란 앞의 法(무여열반)을 가리킴이라. 滅度란 대해탈이니 대해탈은 번뇌와 습기와 일체의 모든 업장이 다 멸하여 다시 남음이 없음이니 이를 대해탈이라 하느니라. 무량, 무수, 무변중생들이 원래 각각 스스로 일체의 번뇌와 탐진치와 악업이 있으니 만일 끊어 제거하지 못하면 마침내 해탈을 얻지 못하므로 그래서“이와 같이 무량, 무수, 무변중생을 멸도한다”하시니라.
일체 迷한 사람이 自性을 깨달아 얻으면,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相을 보지 않으시며 자신의 지혜도 두지 않음을 비로소 알게 되리니, 하물며 어찌 일찍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이(부처님 가슴에 남아 있겠는가. 다만 범부가 스스로의 본심을 보지 못하고)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며 모든 相에 집착하여서 無爲의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여 我와 人을 제거하지 못함을 衆生이라 이름하니, 만약 이 病만 여의면 실로 중생이 멸도를 얻음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망심이 없는 곳이 곧 보리이고 생사열반이 본래 평등이라 하시니 또 어찌 멸도 했다는 것이 있으리요.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六祖   衆生과 佛性이 본래 다름이 없건만 四相이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四相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이니라. 迷하면 佛이 곧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중생이 곧 佛이로다. 迷한 사람이 재보와 학문과 族姓(가문)이 있음에 의하여 모든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것을 我相이라 하고 비록 仁義禮智信을 行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말하기를‘나는 仁義禮智信을 행할 줄 안다’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人相이라 하도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림을 중생상이라 함이요,
  어떤 경계에 대하여 취사 분별함을 수자상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의 四相이라 하느니라. 修行人도 또한 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가볍게 여김을 아상이라 하고, 자기가 戒가짐을 믿고 파계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人相이라 함이다.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天上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 상이요 마음에 오래 삶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복업을 닦아 모든 집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이니, 사상(四相)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四相이 없으면 곧 부처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