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진, 입도 조금 헤벌어진, 그것은 불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도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等身大)의 결가부좌상이었다.<중략> 무엇보다도 성불이 되었으면 부처님의 상호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얼굴에서는 괴로움 많은 인간을 느낄지언정 원만한 부처님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의 한대목이다. 뜬금없이 등신불이라니,
#고승의 처소
다솔사(多率寺) 입구에는 약수터가 있어 주말 나들이객으로 붐빈다. “물만 떠가면 무슨 재민겨”바람에 흔들리는 적송이 마치 손짓이라도 하는 것 같다. 웃자란 것처럼 쭉쭉 뻗었지만 어떤 것은 아름드리가 있고 그것은 약 200여m의 숲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가 많아서 다솔인가. 사람들이 착각 할만하다. 실은 장군대좌혈로 ‘많은 군사를 거느린다’ 는 뜻의 다솔이다.
적송의 숲, 머리를 맑게 한다는 피톤치드는 고목이기에 더욱 진하고 더 많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찰은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조용히 봉명산에 안겨 있는 모습이다. 실제 요즘 유행하는 ‘구글어스’에서 찾아보니 머리에 해당하는 봉명산이 동남쪽으로 두 팔을 펼친 형상이며 그 품안에 자리하고 있다.
다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본사 쌍계사 말사. 신라 지증왕 때 (503년)연기조사가 영악사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 문무왕 때 의상대사,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머물렀다. 임란 때 소실됐고 숙종 12년 (1686년)에 중창해 중흥기를 맞았다. 일 강점기에는 만해 한용운과 김범부 등이 중심이 돼 항일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을 조직, 항일운동을 이끈 장소다. 이때 김동리는 형 범부를 따라와 이곳에서 집필했다. 가히 고승의 처소다운 이력이다. 사천 곤명에 있다.
다솔사는 허투루 지나기엔 볼 것과 느낄 것이 많다. 적멸보궁과 와불 그 뒤로 보이는 부처님 진신사리 부도, 대양루, 만해가 중수해 정진했다는 응진전, 보안암 석굴 등을 들수 있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쓴 배경
그 중에서도 관심을 끄는 것은 서두에 언급한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等身佛)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 김동리는 경주 태생이지만 23세부터 10여년정도 다솔사 요사채에서 지냈다. 인근 원전마을에 있는 사찰 관할 광명학원을 오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수필집에서 등신불을 쓰게 된 배경을 밝혔는데 어느 날 만해가 다솔사에 왔을 때 형 범부와 대화 도중 중국의 어떤 이(소설엔 만적으로 나옴)가 속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이른바 분신공양에 관해 들었다.
충격적인 내용을 들은 김동리는 다솔사에서 이를 소재로 등신불을 썼다. 1961년 11월 사상계에 발표되면서 세인의 반향을 불러왔다. 따라서 등신불의 고향은 다솔사이다.
다솔사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봉명산 정상으로 갈수 있다.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경사가 급하다. 다음 삼거리에서 아예 왼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경사가 완만해 시간이 더 걸리지만 편한 길이다.
#보안암까지 이어진 사색공간
고스락의 키 큰 소나무 사이로 통나무로 제작한 전망대가 있는데 남해와 삼천포항, 그 멀리 바다가 보인다.
여기서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보안암 석굴엘 가려면 올랐던 완만한 길을 택하면 된다.
서북쪽으로 바라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 구불구불 주릉이 이어진다. 마치 꿈틀거리는 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길은 김동리가 등신불을 탄생시킨 길이다. 같은 시절 독립투사들의 고뇌가 있었던 길이기도 하다. 가깝게는 이 사찰에 머물며 창작열을 불태웠던 시인 묵객, 조금 멀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머리 조아렸던 선인들의 응어리와 한이 서린 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능선길에서 고뇌했던 명사는 많다. 만해 한용운, 효당 최범술, 김범부, 김동리, 수주 변영로, 영운 모윤숙이 그랬다.
길의 끝에서 만난 보안암은 석굴 석조여래좌상을 보듬고 있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경주 석굴암을 연상케 한다. 어딘지 모르게 토속적인 향취가 풍긴다. 고려시대 석굴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 모신 ‘적멸보궁’
다시 다솔사.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셔놓았다는 적멸보궁(사진 왼쪽). 편액이 건물에 비해 큰 것이 특징이다. 그 안에 와불이 있고 진신사리 부도는 창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1500년 동안 대웅전이었는데, 1979년 응진전의 아미타불상에서 사리 108과가 나와 적멸보궁으로 개축한 뒤 옮겼다 한다.
마주보고 있는 대양루(사진 오른쪽)는 정작 적멸보궁보다 규모가 더 크다. 조선 영조 때 건물로서 주로 불자들에게 설법하던 장소로 사용됐다. 특이한 2층 구조인데 내부 10m짜리 석가래를 제외하곤 외부기둥으로만 무거운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1층 기둥은 통나무를 그대로 사용했고 2층은 갈무리한 기둥을 사용했다. 몇해전 대양루 대고(大鼓)에 3000년의 꽃 우담바라가 피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찰 앞 편백나무는 만해의 흔적, 1939년 그의 회갑연에 심은 것이다. 만해가 정진했던 응진전은 수리가 한창이다. 가을에 핏빛을 뿜어 낼 단풍은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등신불을, 김동리를, 만해를 느끼고 싶다면 다솔사는 어떤가.
#북천 메밀꽃 잔치
인근 북천 직전마을에는 코스모스 메밀꽃 단지탐방체험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지난해 관광객이 14만명이 찾아온 명소가 됐다. 20ha규모에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활짝 피었다. 섶다리체험과 오두막은 향수를 자극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세미와 조롱박터널은 가을을 만끽하게한다. 막걸리, 메밀묵 등 토속음식이 준비돼 있어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본격적인 행사는 이번 주말 28일부터 내달 7일까지 열린다.
최창민 기자 cchang@gnnews.co.kr
경남일보 2007-09-27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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