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 '웃은 죄'
즈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었지요.
평양성(平壤城)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 [신세기](1938년 3월)
파인 김동환(파인 김동환)은 「국경(국경)의 밤」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시인이다 남성적
이고 대륙적인 굵은 골격으로 이루어진 그의 서사시(서사시)는 서정시(서정시)위주의 한
국 시사(시사)에 매우 희귀하고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반드시 장편 서사시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웃은 죄(죄)」와 같이 아주 짧은 시에
서도 우리는 「국경의 밤」과 같은 파인의 서사시적 특성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서사문학을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란 말이 될 것이고, 이야기를 풀어서 말하면 「여러
가지 사건이나 행동을 엮어나가는 사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은 죄」는 다섯
행 미만의 단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서사문학이 갖고 있는 모든 요소가 압축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서사문학의 가장 큰 요소인 행위의 코드를 보자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
요」는 소설로 치면 발단에 해당하는 행위(사건)이다 행위코드를 요약하면 「지름길을 묻
다」와 「대답하다 (가르쳐주다)」이다
이 문답은 하나의 행위사슬에서 한 단위를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의 단위를 「이야기
구조」의 기능적인 요소로 요약하면 「요구하다」와 「들어주다」가 된다
작은 이야기이든 큰 이야기이든 서사예술에서 다루는 행위의 사슬은 「예스」와 「노」의
두선택지의 가지를 타고 전개되어 간다 그러므로 예스의 긍정축으로 선택된 이야기는 다
시 새로운 행위로 이어진다
「물 한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가 그것이다 길을 묻는 행위가 물을 달라는 행위로 이
어지고, 길을 가르쳐 주던 응답은 샘물을 떠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구조는 똑같이 「요
청하다…들어주다」이다 그리고 다시 그 행동은 3행째의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었
지요」로 「인사하다(답례하다)」로 끝난다 행동코드로 보면 「요청하다…들어주다」의
두행위를 마무리짓는 종결부분에 해당된다 서사예술의 구조를 「시작…중간…끝」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이론 그대로 길을 묻고 대답하는 첫행은 발단부문의
「시작」(기)이고, 2행째의 물 한모금 달라기에 떠주었다는것은 「중간」(승),그리고 마지
막 인사를 주고받다는 「끝」(결)에 해당한다
그러나 「요청」하고 「받고」하는 행위는 행위의 주체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웃은 죄」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행위주(행위주)의 신분과 성격을
나타내는 인물코드가 곳곳에 숨어 있다 「지름길 묻길래」라는 행위를 행위주의 신분과
성격을 나타내는 코드로 분석하면 「나그네」가 되고, 길을 가르쳐주는 측은 그 고장에 사
는 사람으로, 「마을사람/바깥사람」 「정착자/여행자」(정착자/여행자)의 대립적인 인물
코드를 형성한다
그러나 두번째의 물 한모금 달라와 샘물을 떠주는 행위항(행위항)에서는 남/녀(남/여)의
성별을 드러내게 된다 샘물을 떠주는 것으로 그 화자는 행동의 장소가 샘터라는 사실과
샘물을 떠주는 행위주(행위주)는 샘터에서 일하고 있었던 여성이었음을 알려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사예술의 또다른 요소인 문화적(문화적) 코드를 찾아낼 수가 있는 것
이다
왜냐하면 샘터는 문화풍속으로 볼 때 여성에 속하는 젠더 공간이며, 봉건적인 규방문화(규
방문화)에 얽매어있던 여성들에게는 유일한 열려진 공간으로 낯선 외간남자와 만날 수 있
는 로맨스의 극적장소의 하나인 까닭이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샘물을 떠주고 거기에 버들
잎을 띄워주는 것으로 남녀의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들은 민요, 민속, 속담과 같이 문화적
코드에 속하는 것이다 ) 그러나 이 시에서 기술된 행동의 연쇄가 서사예술로 의미를 갖는
것은 마지막 연의 「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웃은 죄밖에」의 그 두행이다 왜냐
하면 이 두행에 의해서 수수께끼 코드라고하는 해석학적 코드와 상징코드를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수줍은 시골처녀 모습 보이는듯
길묻기→물달래기→인사 '샘터의 대화'
웃은 죄밖에… '사랑-그리움-고민' 감춰
'평양市' 아닌 '평양城'… 옛정취 물씬!
<웃은 죄>라는 말은 웃음이라는 행위속에 감춰진 진짜의미를 알려주는 것으로, 실은 「인
사하다…인사받다」가 행위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길을
묻다」 「물을 달라고하다」 「인사를 하다」의 세행위항의 연쇄에서 마지막 인사하다도
실은 앞의 것과 마찬가지로 「요청하다…받아들이다」로 풀이된다 즉 인사는 구애(구애)
의 프로포즈이고, 인사를 받다에서 그 웃음은 단순한 인사에 대한 받아들이다가 아니라 그
프로포즈에 대한 예스의 또 하나의 긍정축이었던 셈이다
그뿐아니라 행위코드에서는 단순히 인사를 「받아들이다」의 표시지만, 상징코드로 보면
웃음은 욕망의 금제(금제)나 억제(억제)와 대립하는, 닫힌 것으로부터 열린 곳으로 나가는
의미가 된다
즉 사랑의 상징코드인 것이다 「평양성에 해 안떠도 나는 모르오」는 일종의 문화코드이
기도 하지만 해석적 코드와 상징코드에 속한다
해석코드는 규방처녀가 길가던 나그네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숨겨진 사건찾기가 되고,
문화코드로 보면 남녀유별의 도덕적 파계(파계)나 사회적 관습에서 일탈된 한국적 애정이
나 그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평양성에 해가 안뜬다는 것은 천륜을 어기거나 사회적 질서의 일탈성과 파괴로 일어나게
되는 것을 천변과 관련시키는 일종의 속담같은 봉건사회에서의 문화코드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말에서 우리는 사랑을, 어쩌면 첫사랑을 하게 된 시골처녀의 수줍고 천진한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즉 인물코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화자의 연극적 대사를 통해서 우리는 앞에서
읽은 모든 행동의 연쇄를 거슬러 다시 읽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길묻기, 물달래기, 인사하기로만 보여졌던 일련의 행위들이 다시 거
슬러 읽게됨으로써 실은 그 두사람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그 요청과 응답도 역시 심
도와 은밀성을 증대시켜가는 것으로 인식된다 말하자면 해석학적 코드의 역할을 하고 있
는 것이다
「웃은 죄」에는 일체의 정감적 언어가 배제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말, 그리움이라는 말, 혹
은 그 비밀을 간직하고자하는 혼자만의 고민등이 단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서사예술의 기법과 연극적 대사를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행위코드, 인물코드, 해석적 코드, 상징적 코드, 그리고 문화적 코드의 다섯가지 코드에 의
해서 「국경의 밤」과 같은 사랑의 서사시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행위에 의해서 객관적
으로 그려진 한 여인과 그 사랑의 발견…평양시가 아니라 평양성이라고 부르던 옛날 북녘
시골 여인의 정감을 우리는 마치 장터에서 팔던 딱지소설이 아니면 구성진 변사의 목소리
와 함께 돌아가던 무성영화처럼 그리움속에서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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