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 강의실 '징'

[스크랩] 택배 / 박승연

맑은물56 2011. 8. 30. 11:19

 

 

 

택배 / 박승연

 

어머니가 보내신 택배가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도착했다

서둘러 박스를 열어보니

당신의 투박한 손으로 꾹꾹 눌러 담은 채소가

자식 향한 어머니 마음처럼 부풀어 오른다

더운 공기에 시든 푸성귀를 다듬어 목욕시키니

당신의 푸른 미소로 살아난다

저녁상에 상추 쑥갓 담아내니

당신의 잊고 살아온 세월이 떠오른다

인고의 세월 견뎌내며 흙처럼 사신 당신

둥지 떠나 암 수술한 자식을 위해

산수傘壽에도 여전하신 사랑에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 넘쳐난다

상추 한 잎 입에 넣으니

밭 매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 가까이 계시나 언제나 그리운 당신

야채처럼 싱싱한 세월을

택배로 되돌려 보내드리고 싶다

 

- 시집 『가시나무새의 눈물』(문학공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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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처럼 편안히 읽히다가 막판에 시인의 마음이 오롯한 시적 매듭 하나가 참하게 걸려 있음을 본다. '진리는 곧 아름다움이요, 아름다움은 곧 진리'라고 시인 존 키츠는 말했다. 시인의 생활 주변에서 얻은 보편적 진실과 부모자식간의 정이 참으로 아름답고 따습다. 시에서처럼 시골서 농사지은 것들을 가끔 택배로 받아먹어가며 사는 도시인과 그렇지 않은 도시인의 삶은 질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나지 싶다.

 

 주변에는 쌀이며 잡곡에서부터 고추 빻은 것과 마늘 등의 일 년 먹을 양념, 온갖 야채와 푸성귀, 옥수수 고구마 밤 과일 따위의 주전부리들, 심지어 김장김치와 된장 고추장까지 모조리 시골에 사는 부모형제들로부터 공급받아 먹고사는 이들이 있다. 나같이 시골에서 깻잎 한단 보내주는 곳 없는 사람으로서는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드문 일이긴 한데 돈만 주면 도시에서 얼마든지 사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왜 성가시게 자꾸 보내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물론 힘들게 돈도 안 되는 농사를 짓는 게 안타까워 그러기도 하겠는데, 대개는 그것들을 소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으로 손이 거칠어졌을까를 생각하며 감사히 받으리라. 산수 80세면 구부정한 허리로 땡볕에 밭으로 나가 따오신 푸성귀가 아닌가. 그런 ‘흙처럼 사신’ 어머니의 극진한 자식사랑이 있었기에 암을 극복하고 지금껏 그 울타리 안에서 별 탈 없이 살 수 있었을 게다. 올해는 탄저병에 고추가 마르고 긴 장마에 쪼글쪼글해진 야채일망정 어머니의 숨결이 담긴 ‘싱싱한 세월’을 희생한 가을걷이가 어김없이 또 바리바리 부쳐올 것이다.

 

 

권순진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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