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월 / 안용태
반야월/ 안용태 하늘이 내려앉았다 별들이 모두 아파트 창에 매달려 아우성을 친다 경산에서 바라보는 반야월의 밤, 반월이 무색하게 가늠하지 못할 거대한 은하가 금호강에 실려 끝없이 흘러간다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다면 함께 휩쓸려 가는 데까지 가봤으면 좋겠다. - 계간 <시하늘> 2009년 겨울호 ..........................................................................
반야월은 행정구역상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과 그 인근을 지칭한다. 예전엔 경북 경산군에 속한 지역이었지만 여태 대구 사람에겐 안심이란 지명 대신 반야월로 더 친근하게 불린다. 그런데 이 반야월과 안심이란 지명의 유래가 꽤 사실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산시 와촌면 그리고 군위군에 걸쳐있는 팔공산은 왕건의 여덟 장수가 전사한 것에 유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후백제 견훤 군사와의 대접전에서 신숭겸이 왕건대신 전사하는 등 대패하자 왕건은 군대를 해산하고(파군제) 얼굴이 하얗게 질려(백안동) 계속 정신없이 도망가다 어느 지점에 와서야 본래의 혈색을 찾았고(해안동) 적의 기척이 감지되지 않아 안도할 즈음에(안심동) 반월의 빛이 어두운 길을 밝혀준 곳이라고 해서 반야월이 되었다고 한다.
시쳇말로 ‘열나게’ 도망쳐 내려오다 이쯤에서 얼굴도 펴지고 안심하여 달도 쳐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달아나려면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똥오줌 가릴 겨를 없이 반대편인 동남쪽으로 냅다 달렸던 것인데 그때 왕건은 달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시인은 어쩌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때 왕건의 심정이 되어 반야월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에게 패하고 도주하다 숨을 고르는 사이 자신을 비추어주는 반달.
도시에서 살아가는 중년의 삶이란 게 문득 되돌아보면 대개 그렇지 않을까. 안용태 시인은 예전 같으면 중년이라 하기엔 좀 송구스러운 나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도시에서 나름의 생존전략도 터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경산은 그가 일하는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다. 그곳 창 너머로 보면 멀리 반야월이 보인다.
퇴근 무렵 어둠이 스며든 아파트 창문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힌다. 하늘에 떠 있어야할 별들이 모두 아파트의 창에 매달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거대한 은하가 금호강에 실려 끝없이 흘러간다. 일상에 쫓기듯 지지 않으려 기를 쓴 삶이지만 늘 제자리걸음으로 느껴진다.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다면’ 그 은하와 ‘함께 휩쓸려’ 떠내려가는 대로 ‘가는 데 까지 가봤으면 좋겠다.’는 상념에 왜 아니 젖어들까.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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