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달팽이 경전

맑은물56 2011. 1. 15. 14:43

       詩가 있는 풍

           

 

달팽이 경전

장혜원

 

어머니의 텃밭 한 두름이 택배로 왔다

애비 녹즙해주어라는 문구와 함께

케일이 단정히 묶여 왔다

갈피 사이에 숨어들어

달팽이도 따라 왔다

케일을 씻다가 무심코 물과 함께 버린 달팽이

개수대 위로 올라와 몸을 곧추세운다

팽팽한 더듬이가 내 촉수를 두드린다

공명통 같은 집에서 소리를 퍼올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내 달팽이관을 밀어붙여도

말랑거리는 퍼포먼스를 독해할 수가 없다

어머니 기도하는 모습 같기도 하여

무어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연신 같은 동작만 거듭하더니

묵묵히 창 쪽으로 걸어간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 말고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제 갈 길만 가라는 듯

 

시 읽기

  애비 녹즙해주어라는 문구와 함께 어머니의 텃밭 한 두름이 택배로 왔다. 자식들을 다 여의신 어머니는 이제 텃밭에다 다시 생의 교훈을 심고 길러 정성껏 싸 보내주신다. 시인은 단정히 묶여 온 케일을 씻다가 무심코 물과 함께 버린 달팽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인간관계란 각자의 이념과 사고에 따라 오해와 논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각기 다양한 인생관을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 누구나 서로를 잘 알기 전까지는 속내를 훤히 드려다 볼 수도 없고, 속내를 훤히 드러내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자칫 오해와 구설에 휘말리면 곤경을 치르게도 되는 것이다.

  더구나 누구든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고, 다 알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자신이 아는 만큼, 자신이 이루어가는 만큼 얻어지는 자신의 몫을 사는 것일진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할 것인가? 공연히 자신과 다른 것들을 참견하거나 분별하지 말고, 오롯이 자신의 몫을 게으르지 않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리라.

  같은 동작만 거듭하며 창 쪽으로 걸어가는 달팽이의 말랑거리는 퍼포먼스....

시인은 팽팽한 더듬이에서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제 갈 길만 가라’ 는 어머니의 문구를 읽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자식들을 향해 묵묵히 걸어오신 어머니의 일생을 읽고 있는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