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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모들이 한국학교에 아이 보내는 까닭

맑은물56 2011. 4. 11. 15:28

미국 부모들이 한국학교에 아이 보내는 까닭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4.11 12:17

 




[[오마이뉴스 고은아 기자]





작년 5월초 성약한국학교 발표회 모습.

ⓒ 성약한국학교 제공





작년 5월초 성약한국학교 발표회에서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

ⓒ 성약한국학교 제공

우리 가족이 8년 가까이 살던 매사추세츠 주 시골 동네를 떠나 애틀랜타로 이사 오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자녀교육이었다. 누군가는 교육환경 좋다는 매사추세츠를 버리고 왜 조지아 주로 갔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생각한 좋은 교육환경이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한인 커뮤니티'가 필수조건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 가정이라곤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곳에서 자기가 백인이라고 착각하면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한국인, 미국화된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





재미한국학교 동남부지역협의회 교사연수회에서 조지아주립대 교육심리 및 교육공학과 최익선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고은아

지난 4월 2일 재미한국학교 산하 동남부지역협의회(회장 김옥현, 이하 동남부협의회) 교사연수회에서 주제 발표를 한 최익선 교수(조지아주립대학 교육심리 및 교육공학과) 역시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다 함께 잘 자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내 아이 혼자 공부를 잘한다고 행복할까요?"로 운을 뗀 그는 아이들이 속한 커뮤니티 전체가 행복해질 때,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그룹들도 더불어 행복한 사회 속에서 자랄 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그에게 한국학교는 미국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일차적으로 접하는 커뮤니티이고, 아이들에게 한국을 가르치는 한국학교 교사들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행사에 참여한 교사들에게 하나의 '조립도'를 그려 보여줌으로써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알려 주고 싶어 강의를 맡게 됐다고 했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에게 한국학교는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래전에 미국에서 살기로 결심하면서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내 아이를 한국인으로 자라게 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인으로 자라게 할 것인가?

한국인 부모에게 태어나서 자동적으로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미국에 태어났기에 미국인이기도 한 아이들. 최 교수는 재미교포 2세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눠서 설명했는데, 배타적인 한국인, 미국화된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이 그것이다. 첫째는 미국 안에 살면서도 한인 커뮤니티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고, 둘째는 한국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셋째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미국 시민으로서 두 나라와 세계에 기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중 가장 바람직해 보이는 세 번째 유형의 사람으로 키우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최 교수는 미국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한국학교라고 했다.

한국학교 때문에 달라지는 한인 2세들의 인생

그런데 한국학교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와서의 얘기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민 온 사람들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보다는 미국인으로 하루빨리 자리 잡는 데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이전에 자라난 세대들은 부모가 특별히 한국에 대해 가르치지 않은 이상, 철저히 미국인으로 자라났다. 한인 2세 소아과 의사인 김경순씨도 그 세대의 한 사람이다.

"저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시골에서 살았어요. 어머니도 소아과 의사였는데 제가 두 돌이 넘도록 말을 잘 못하자 집에서 부모님들이 영어만 쓰시기 시작했어요. 당시 교육학계에서는 이중언어 환경이 한 가지 언어를 제대로 습득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으니까요. 지금 와선 좀 아쉬운 일인데,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루이지애나 주에서 자란 산부인과 의사 신명혜씨도 어려서는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한국인으로서 자각이 생기면서 한국어 과목을 선택해 들었고, 대학 졸업 무렵 한국에 나가 여름 캠프에 참가하면서 한국어 읽고 쓰기는 익혔지만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미국인과 결혼을 해서 슬하에 두 딸을 둔 그녀는 매주 일요일 오후가 되면 집에서 멀지 않은 성약한국학교(교장 백혜련)를 찾는다. 딸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그녀가 알고 있는 한국의 좋은 점들에 대해서도 알게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교회 부설 학교라 한국 사람들을 무더기로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한인 2세 신명혜 씨와 절반의 한국인인 두 딸은 일요일 오후를 한국학교에서 보낸다.

ⓒ 고은아





한인 2세 신명혜씨와 절반의 한국인인 두 딸은 일요일 오후를 한국학교에서 보낸다.

ⓒ 고은아

"저희가 자랄 때는 주변에 한국학교가 하나도 없었어요. 처음 여기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게 무척 신기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처럼 한국말을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하고 싶어요."

김경순씨와 신명혜씨는 비록 자신들은 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한인 3세인 자식들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사회에서 의사로서 뿌리를 내렸지만 한국인으로서 뿌리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한국학교 교사들이 교사연수회에 멀게는 차로 7시간 거리를 운전하고, 아예 하루 전날 도착해 하룻밤을 호텔에서 보내면서까지 참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날이 한국정부로부터 우송된 교재를 애틀랜타 총영사관을 통해 무료로 나눠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협의회 측에서 미리 학교별로 신청한 교재들을 챙겨놓은 덕분에 예년과 달리 번잡하지 않게 교재 배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 고은아

이들보다 조금 젊은 세대인 양성현씨는 LA 지역에서 자라났다. 한인인구가 많은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데는 그런대로 무리가 없다. 어렸을 때는 한국학교에도 다녔다고 했다. 한국학교 1세대인 셈이다. 대학 졸업 후 로스쿨에 진학하기 직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7개월 정도 지낸 경험이 있는데, 그때가 2002년 월드컵으로 전국이 들썩거리던 시절이었다.

"미국에 사는 동안 그렇게 신나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한국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죠."

한국인으로서 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한 그는 변호사가 된 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려고 마음먹고 어학원에 등록해 1년 반 넘게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한국학교와 한인 커뮤니티의 존재는 이처럼 한인 2세들의 인생 전체에 깊고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매사추세츠 주의 시골에서 살던 시절, 그곳 한인교회에서 만난 한인 1세들의 장성한 자녀들 중 특히 여자들은 하나같이 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한국학교의 부재와 그들의 결혼을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다면 미국 주류 사회에서 한인 2세들을 바라보는 시작은 어떨까. 성약장로교회의 황일하 담임목사는 최근 한국학교 교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한인들 중에 미국 대기업의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그때 이분들께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대기업 면접 때 한국계 미국인인 후보가 오면 우선 물어보는 게 한국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하는 것이랍니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자신의 뿌리, 즉 부모님 나라의 언어를 능통하게 한다는 건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란 인재라면 자신들의 회사 일도 그만큼 열정적으로 하리라고 보는 것이지요."

자기가 아무리 완벽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한국인일 수밖에 없고,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꽃을 피운 사람이라야 참 인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성약한국학교 교사진.

ⓒ 성약한국학교 제공

한국학교 속의 미국 아이들

한편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는 한국학교 안에서 최근 들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학생 구성의 변화이다. 한국과 미국 문화 사이의 경계선에서 주로 미국화되는 경향이 강했던 절반의 한국인들, 즉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이 현저히 늘어났고, 더 나아가 한국과 관련이 없는 미국인들이 한국학교를 찾아오는 경우까지 생겼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한인 밀집 지역의 학교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지만 한인들이 소수인 지역에서는 이런 변화가 현저하게 느껴진다. 앞서 소개한 성약한국학교의 경우 이번 학기 등록 학생 53명 중에 이런 학생들이 10명이나 된다.

이런 변화의 기저에는 미국인들 사이의 인식 변화가 한몫을 하는 듯하다.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미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한 발짝 후퇴한 탓도 있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미국 부모들의 사고가 바뀐 탓도 있는 것 같다.

모니크 스미스씨는 이런 부모들의 선두주자쯤 된다. 홈스쿨링으로 자녀 다섯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래서 동양인 학생들에게 개인 과외를 해주기도 했었는데, 타 문화를 접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 딸은 중국학교에 보내 중국어를 배우게 했고, 셋째와 넷째 딸은 한국학교에 보내 한국어를 배우게 했어요."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운 첫째와 둘째는 에모리대와 조지아텍에 재학 중이고 대학에서도 중국어를 계속 배우고 있다. 한국어를 배운 셋째 딸 애나는 11학년 과정을 마치는 올 가을 대학에 진학한다. 벌써 에모리대와 듀크대, 워싱턴대 등 명문대 여러 곳에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다. 한국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한 후 더 많이 배우고 싶어 성인 대상 사설 어학원을 찾아왔던 애나의 한국어 실력은 독해와 읽기만 본다면 웬만한 한인 2세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 애나는 나중에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6학년인 애나의 동생 아비바는 현재 성약한국학교 재학생이다.

이제 한국학교는 한국인 2세들의 정체성을 북돋워주는 기관에서 다른 문화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됐다. 다른 문화권에서 한국을 배운다는 건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한 일이다. 한국정부로서는 별도의 투자 없이 지한파 외국인을 길러낼 수 있는 길이고, 미국정부로서는 손 하나 까딱 않고 한국 전문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양쪽 모두 이득이다. 이 점을 잘 설득할 수 있다면 앞으로 한국학교가 미국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돼야 한다. 한국인 2세들을 교육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 시민을 교육하는 일이지 않은가.





모니크 스미스씨와 딸 아비바.

ⓒ 고은아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한국학교로 가라?

지금 한국 밖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수가 700만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남북한을 합친 인구의 10%다. 한국 밖에서 뿌리를 내리는 한국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곳, 자생적으로 생겨나 이제 2100여 개로 뻗어 나간 세계 속의 한국학교. 교민 250만이 살고 있는 미국에만 1000여 개의 한국학교가 존재하지만 이들 중 90% 이상이 학생 수 100명 미만의 소규모 학교인 까닭에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최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우선 일관성 있는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질적으로 우수한 교사 확보가 어렵고, 학생 수준의 편차가 심하고,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현실에 맞는 교재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자원봉사로 헌신하는 교장의 빈번한 교체로 학교 운영이 어려운 곳도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있지요. 이처럼 많은 곳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문제점들을 이제는 좀 더 체계적으로 해결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산적한 문제들. 갈 길은 멀다. 그럼에도 두 문화의 교차점에서 글로벌 인재에게 요구되는 창의성과 지식의 유연성, 문화 간 협동 및 존중 능력을 키우는 데는 한국학교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학생 수준과 연령, 심지어 인종이 다른 상태에서 학습하고 적응해야 하는 경험이 실제 사회에 나왔을 때 그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학교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진정한 '한국계 미국인'이 되려는 한국인 2세에게도, 한국을 배우려는 미국인에게도.





작년 5월초 성약한국학교 발표회에서 태권도 실력을 선보이는 아이들.

ⓒ 성약한국학교 제공

재미 한국학교 현황

동남부협의회가 속해 있는 재미한국학교협의회( www.naks.org ) 산하에는 14개의 지역협의회가 있다. 뉴잉글랜드, 동북부, 동중부, 워싱턴, 동남부, 미시간, 중서부, 중남부, 플로리다, 남서부, 서북미, 북가주, 콜로라도, 하와이 지역협의회가 만들어져 활동 중이며 현재 회원학교 수가 1200개 교에 이른다. 한편 캘리포니아 주, 유타 주, 뉴멕시코 주, 네바다 주, 애리조나 주 등에 속한 250여 개의 한국학교들을 지원하는 미주한국학교연합회( www.koreanschool-usa.org )도 별도로 존재한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는 재미한인학교협의회라는 이름으로 1980년에, 미주한국학교연합회는 한국어교육기관협의회라는 이름으로 1982년에 설립되었는데, 전자는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후자는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간 셈이다. 현재로선 규모와 지역 면에서 재미한국학교협의회가 대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으나 양쪽의 연혁에 언급된 내용을 분석해 볼 때 두 기관은 '한국학교'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협조·지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칭에 있어서는 양쪽 모두 한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0년대부터 오늘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1500개에 가까운 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다 보니 학교마다 이름도 가지각색으로 나타났는데, 한인학교, 한글학교, 한국학교가 혼용돼서 쓰이다가 최근에는 한국학교로 점차 통일해 나가는 추세다. 한인학교는 자칫 한국 사람들만 다니는 학교로 배타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고, 한글학교는 언어 외에도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주말학교의 특성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요즘은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 사회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다닐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한국학교'가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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